94세 고령에도 戰犯 쫓는 비젠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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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 5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 희생자 추모식.

사회자가 지난 50여년간의 나치 전범 색출 성과를 낭독하기 시작하자 참석자들의 시선은 단상의 비어 있는 의자 하나에 고정됐다. 전설적인 '나치 전범 사냥꾼' 시몬 비젠탈(94.사진)을 위해 비워둔 자리였다.

고령으로 기력이 쇠해 자리를 함께 할 수는 없었지만, 추모식에 모인 수천명의 사람들은 평생을 나치 전범 추적에 바친 그의 업적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했다.

1907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비젠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12개 강제수용소를 전전했다. 온갖 고초를 겪으며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던 그는 일가친척 89명을 모두 홀로코스트로 잃었다.

45년 오스트리아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에서 풀려난 그는 전쟁 전 직업이던 건축가로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나치 전범을 색출하고 전세계에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알리는 일에 뛰어들었다. "정의를 찾는 노력은 피해자 스스로 시작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오스트리아 빈 시내에 '유대인 문서센터'를 설립한 비젠탈은 혼자서 나치 학살 관련 증언과 자료들을 수집, 전범 추적 작업에 나섰다. 복수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전범을 응징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면 또 다시 끔찍한 집단살인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50여년간 그가 법정에 세운 나치 전범은 1천1백명. 그중 유대인 말살작업을 주도해 '아우슈비츠의 살인마'로 불린 비밀경찰 총수 아돌프 아이히만을 끈질긴 추적 끝에 색출한 일화는 유명하다.

수년간 아이히만의 뒤를 쫓던 비젠탈은 51년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 숨어 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 이를 이스라엘 정보부인 모사드에 알렸고 아이히만은 결국 체포돼 교수형에 처해졌다.

미국과 이스라엘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 설립된 '시몬 비젠탈 센터'는 그의 뒤를 이어 지금도 나치 전범의 행적을 쫓고 있다.

건강상의 이유로 공식석상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지금도 그는 매일 오전 9시30분이면 3천여명의 전범 기록이 보관돼 있는 '유대인 문서센터'로 출근한다.

홀로 책상에 앉아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보내온 편지와 나치 전범과 관련된 자료들을 정리한다. 몇년 전부터는 학생들을 위한 홀로코스트 교육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을 편하게 보내라는 주위의 권고에 비젠탈은 잘라 말한다.

"나는 은퇴할 수 없다. 아직 잡히지 않은 나치 전범이 수백명이다. 죽는 날까지 나는 그들에 대한 추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신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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