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서른다섯 김동수 "안방 다신 못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시간인 줄 알았는데-. "

서른두살의 나이에 요절한 가수 김광석은 '서른 즈음에'란 노래에서 저만치 떠나가는 청춘의 아련한 추억을 읊조렸다.

그런데 청춘의 끝을 왜 서른살로 잡았을까. 일반인이라면 덤덤할지 모르지만 야구 선수라면 애수를 가득 담은 김광석의 음성이 가슴을 저밀 것이다. 특히 포수들이라면….

포수 나이 서른이면 '정년퇴직기'라는 것이 야구계의 정설이다. 이 나이면 출장경기수가 1천 경기를 넘나든다. 묵직한 장비를 착용한 채 쪼그려 앉아 투수의 투구를 받아내야 하는 데다 주자와의 몸싸움도 피할 수 없기에 온갖 부상이 겹친다. 그래서 프로 10년차 전후인 30대 초반에 은퇴하는 경우가 많다. 1991년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 장채근(현 기아코치)씨도 10년을 뛰고 은퇴했다.

14년차 김동수(35.현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 최장수 현역 포수의 부활에 야구계가 놀라고 있다. 12일 현재 출장 경기수는 1천3백90경기. '야구 생태계'의 질서대로라면 마스크를 벗었어야 할지 모를 '노장'이 타율 0.342로 전체 6위, 출루율 3위(0.430), 도루 저지율 3위(0.459)로 공.수 전 부문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다.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 최다 수상(6회) 기록 보유자인 김동수도 서른한살이던 99년을 고비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난해 말엔 SK에서 방출되는 수모도 당했다. 그러나 그는 용케도 울분 속에서 자신의 가슴을 후벼파는 분노가 욕심이 시킨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SK에서 제시한 코치 자리를 마다하고 연봉을 50%나 깎이면서 마스크를 되찾은 김동수는 모든 것을 새로 시작했다.

겨우내 줄넘기와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르지 않고 꾸준히 하체를 단련해 전성기의 푸트워크를 되찾았다. 그러자 길이 보였다. 처음엔 헛된 꿈 같던 일이 분명히 가능한 일로 다가왔다.

김동수는 현대의 백업 포수로 올 시즌을 시작했다. 그런데 시즌 개막 이틀 만에 주전 포수 강귀태(24)가 무릎인대 파열로 홈플레이트를 비웠다. 노장은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해묵은 경험들이 승부의 고비마다 농익은 장맛처럼 우러나왔다. 최근엔 팀 11연승을 이끌며 주위의 우려를 씻어냈다.

나이는 어쩔 수 없다 싶은 대목도 있다. 지난 13년간 한 시즌 평균 5개에 불과했던 실책이 올 시즌엔 벌써 5개나 된다.

그러나 김동수는 거리낌 없이 "나이는 못 속인다"며 너털웃음을 웃는다. 그의 웃음에서는 생기와 여유가 함께 묻어난다. 생생히 살아있는 '현역'이라는 자부심을 누구도 이 노장에게서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다.

김종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