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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한가위특집] 뻔한 그래도 화려한 할리우드 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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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초점을 맞춘다면 오히려 할리우드 영화인 '신데렐라 맨'과 '찰리의 초콜릿 공장'이 추석 분위기에 맞는다. 두 편 모두 전체 관람가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감독 팀 버튼)은 어린이와 어른 모두가 대상이다. 수수께끼에 싸인 세계 최고의 초콜릿 공장을 방문할 기회를 잡은 착한 소년 찰리(프레디 하이모어)는 하나같이 되바라진 다른 아이들을 제치고 마침내 공장주인 윌리 윙카(조니 뎁)가 준비한 선물을 받게 된다. 하지만 철든 소년 찰리는 선물을 마다하고 소중한 가족을 선택한다.

팬터지가 특기인 감독의 영화답게 초콜릿이 강물처럼 흐르는 공장 내부의 꿈같은 풍경은 물론이고, 문자 그대로 '다 쓰러져 가는' 찰리네 집이나 치매기가 있는 할아버지.할머니까지 동화처럼 그려진다. 대신 감독의 젊은 시절 악동 기질은 많이 탈색됐다. 어쩌면 감독 자신이 완연히 어른이 된 이상, 버릇없는 아이들을 보고 싶지 않은 어른의 꿈을 대변한 것처럼도 보인다. 똑같은 얼굴 생김을 한 20명의 움파룸파족이 사이사이 등장해 기묘한 춤과 함께 들려주는 노랫말은 문제 있는 아이들을 차례로 풍자한다.

박찬호 선수가 감동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신데렐라 맨'(감독 론 하워드.사진)은 가족 사랑을 힘으로 다시 일어선 권투선수의 실화가 소재다. 뉴욕의 센트럴파크가 판잣집으로 뒤덮였던 미국의 대공황기, 퇴물 권투선수 브래독(러셀 크로)과 아내(르네 젤위거) 역시 먹을 게 없어 아이들을 친척집에 뿔뿔이 흩어보내야 하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린다. 부둣가에서 일용직 하역노동자로 일하던 브래독은 어렵게 온 대전 기회를 연승으로 이끌면서 동시대 가난한 미국인들의 꿈으로 떠오른다. 남편이 링에서 죽지 않을까 하는 아내의 조바심을 빼면 이렇다 할 반전 요소는 없지만, 사실 퇴물 낙인을 딛고 신데렐라로 떠오른 실존인물 브래독의 인생역정 자체가 반전이다.

'그래도 명절에는 액션'이라는 관객을 위해 올해는 청룽 대신 리롄제(李連杰)가 나섰다. 뤽 베송이 공동제작을, 위안허핑(袁和平)이 무술감독을 맡은 '더 독'(감독 루이스 레테리어)에서는 할리우드 진출 이후 악역만 주로 맡아온 리롄제가 모처럼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주인공 대니를 맡았다. 대신 목에 개줄처럼 묶어 놓은 족쇄가 풀리면 대니는 무서운 싸움꾼이 되도록 길들여져 살아왔다. 맹인 피아노 조율사 샘(모건 프리먼)의 가족을 만나 비로소 인간다운 감정에 눈을 뜬다. 죽을 때까지 싸우는 잔혹한 액션에 가족의 따뜻함을 곁들이는 이색적인 시도인데, 역시나 두 얘기는 이질적이다.

좀 더 머리 쓰는 액션을 원한다면 '레이어 케이크'(감독 매튜 본)가 있다. 마돈나의 남편 가이 리치가 감독한 영국식 조폭영화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와 '스내치'를 만든 제작자의 연출 데뷔작이다. 굳이 짧지 않은 두 편의 영화제목을 거론한 것은 이 영화 역시 마약과 일확천금을 둘러싸고 물고 물리는 역관계와 뒤통수치기가 사슬처럼 이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감각적인 화면은 언뜻 데이비드 핀처가 감독한 '파이트 클럽'의 영향을 떠올리게 한다. 냉철한 장사꾼을 자처하는 마약거래상인 주인공은(다니엘 크레이그)은 이 시장의 거물로부터 약물중독에 빠진 딸을 찾아달라는 영업 외의 부탁을 받는데, 이게 바로 진흙탕으로 걸어들어가는 지름길임이 하나 둘 드러난다. 조각 맞추기 퍼즐 같은 이 두뇌게임의 끝은 자못 교훈적이다. 마약과 폭력으로 흥한 자들, 고스란히 망한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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