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영화 '너는 내 운명' 황·정·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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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충무로에 '황정민 바람'이 분다. '너는 내 운명'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달콤한 인생' '천군' '여자, 정혜' 등 그가 올해 주.조연급으로 출연한 영화만 무려 다섯 편이다. 올 가을에는 형사물 '사생결단'의 촬영에 들어간다. 바람이 일게 된 이유는 다작(多作)이 아니다. 작품마다 내미는 황정민(35)의 놀라운 '변신술' 때문이다. '달콤한 인생'의 능청스러운 사이코가 '여자, 정혜'에선 여리디여린 작가로 돌변한다. 관객들에겐 즐거운 '배신감'이다. 그리고 궁금해한다. "진짜 황정민은 어떤 사람일까?" "황정민의 실제 모습이 궁금해."

12일 그를 만났다. 그는 영화 '너는 내 운명'(감독 박진표.23일 개봉)에서 다시 한번 관객에게 '짜릿한 배신감'을 안긴다.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에 걸린 다방 레지 은하(전도연)와 순도 100%의 사랑에 빠지는 농촌 총각 석중 역에 그는 자신을 온전히 포갠다. 배역에서 삐져나온 황정민을 찾긴 힘들다. 그래서 이번 변신도 완벽에 가깝다. 극단 학전(대표 김민기)에서 5년간 연극 무대에 섰던 기본기 덕분이다. 충무로 일각에선 벌써 '최민식-송강호-설경구' 트로이카의 계보를 이을만한 굵직한 배우로 점찍을 정도다.

-작품마다 얼굴이 다르다. 비결은? (그런데 그는 대뜸 기자에게 반문했다. "울 때 자기 얼굴을 본 적이 있나?" "있다" "어땠나?" "슬펐다" "그런데 연기로 그 표정이 나올까?" "글쎄, 힘들 것 같다.")

"바로 그거다. '척'하는 연기는 한계가 있다. 가슴에서 준비가 돼야 한다. 그럼 대사와 행동은 절로 나온다. 이를 위해선 대본에서부터 '진심'이 담겨야 한다. 내가 좋은 대본을 고르는 기준은 하나다. 바로 '진심'이 담겼느냐, 아니냐다."

-'너는 내 운명'의 대본은 어땠나?

"슬펐다. 정말 한동안 울었다. 에이즈에 걸린 다방 레지를 끝까지 사랑하는 건실한 농촌 총각. 거기에는 기본기를 갖춘 사랑이 있더라. 그게 좋았다. 진심만이 사람을 움직인다."

-영화에는 '봄날은 간다'의 한 장면이 삽입돼 있다. 그리고 석중은 "내 사랑은 안 변해요. 사랑이 어떻게 변해요"라고 외친다. 어떤가. 사랑은 변하는 건가.

"물론이다. 사랑도 변할 수 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있겠나. 그러나 변하느냐, 변하지 않느냐가 핵심이 아니다. 중요한 건 바로 진실성이다. 누구나 순도 100%의 사랑을 지향한다. 그러고 싶어서 다들 사랑한다. 그 다음은 그걸 얼마나 지켜가느냐의 문제다. 그래서 나는 '너는 내 운명'에 나오는 사랑 방식이 다분히 현실적이라고 본다."

-전도연과 빚은 러브신은 어땠나.

"자연스럽고 예쁘게 찍었다. 스태프가 모두 부러워했다. 배우에겐 좋은 배우와 연기하고픈 욕심이 있다. 전도연씨는 연기파다. 테크닉이 아니라 배역과 하나되는 감성 연기를 아는 배우다. 상대역이 전도연씨란 얘길 듣고 처음부터 '이 영화는 연기의 하모니가 기가 막힐 것'이라고 장담했다. 결과는 '역시나'였다. 준비된 배우끼리 만난 기분이었다."

-변신이 잦다. 실제 황정민이 궁금하다.

"진짜 황정민은 재미없다. 실제 나를 담으면 영화 한두 편이면 다 드러난다. 오히려 나는 숨고 싶다. 배역 속으로 꼭꼭 숨은 채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 영화를 찍을 때도 늘 자신에게 반문한다. '지금 내 말과 행동이 황정민의 것인가, 아니면 배역인 석중의 것인가.' 석중에게서 황정민이 조금이라도 비칠 때면 배우로서 정말 부끄러워진다."

글=백성호,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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