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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100대 드라마 ⑨스포츠] 86. 2002 월드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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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섹션은 붉은악마의 중요한 메시지 전달 수단이었다. 이들은 이탈리아와의 8강전에서 ‘어게인 1966’을,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는 ‘꿈★은 이루어진다’를 내걸었다. 꿈속 같던 월드컵 한 달의 절정을 표현한 걸작으로 평가된다.

▶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홍명보가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하는 순간 한국 선수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뛰쳐나오고 있다.

▶ 붉은 티와 태극기는 붉은 6월의 주요 코드. 한국의 경기가 있는 날 길거리 응원에 나선 붉은 인파는 눈덩이처럼 불어 매번 신기록 행진을 했다. 골이 터지고 한국의 승리가 결정될 때마다 이들은 거대한 하나가 되어 얼싸안았다.

▶ 불끈 치켜 세운 두 엄지손가락. 거스 히딩크는 한국 축구와 한국 사회에 신선한 충격과 유쾌한 자극을 선물했다.

▶ 레드 콤플렉스 따윈 없었다.굴레를 벗어던진 W세대의 자부심과 자신감은 국기에 대한 엄숙주의마저 털어내고 태극기를 ‘디자인’으로 재발견 했다.

▶ 붉은 악마 티셔츠를 가슴에 두른 채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나타난 댄스 가수 미나. 외신 기자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은 그녀는 나중에 ‘미스 월드컵’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월드컵이 열린 2002년의 6월. 그 한 달 동안 대한민국은 특별했다.

장애도, 차별도, 반목도, 질시도 없는 꿈 같은 세상.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 장애인과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붉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병상의 중환자들까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손에 땀을 쥐었고 마침내 감동했다.

월드컵은 결코 ‘가진 사람들’이나 ‘힘센 사람들’의 잔치가 아니었다. 한국 사회 그늘진 곳에 깃든 소외된 사람들조차 외로움을 잊었고, 골고루 행복했다. 월드컵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붉은 6월의 한복판에서 한국인들은 그들이 꿈꾸곤 했던 한국의 모습을 완성된 퍼즐처럼 분명하게 바라보았다.

2002 월드컵은 한국 스포츠 사상 최대 사건이었는지 모른다.
이미 올림픽을 치렀고, 세계 10대 스포츠 강국의 하나로 분류될 만큼 국제 무대에서 많은 성과를 올렸지만 월드컵만큼 한국을 송두리째 뒤흔들면서 한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눈을 밝혀 준 이벤트도 없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이벤트를 유치해 완벽하게 성공시킨 한국인의 자부심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W세대’가 뜨다

2002년 6월은 한국에 새로운 종류의 인간을 낳았다. 연인원 2100만 명을 동원하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길거리 응원’과 월드컵 열기의 중심에는 10대 후반~20대의 ‘월드컵(W) 세대’가 있었다. 이전까지 입에 오르내리던 ‘4ㆍ19세대’ ‘6ㆍ3세대’ ‘386세대’의 배경에 정치의식이 있었다면 W세대는 정치적 이념보다 경제적 실용에 일찍 눈뜬 세대로 분류된다. 배낭·인터넷·휴대전화·생수병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이들은 2002월드컵에서 인터넷과 전광판 등을 매체로 삼아 전국의 광장을 순식간에 뒤덮었다. 이들은 누가 권하거나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 움직였다. 사회학자들은 W세대의 이러한 특징을 ‘개인주의에 기초한 수평적 결합’이라고 규정했다.

긍정의 메시지를 외치다

월드컵세대는 그 강한 자신감과 삶의 자세로 기성세대와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보여줬다. 그들이 외친 긍정의 메시지와 외국, 특히 근대 이후 100년간 한국인을 억누르던 서양에 대한 공포감 내지 열등감을 털어내는 적극적인 움직임은 확실히 주목할 만했다. W세대의 자신감은 ‘긍정’의 태도로 나타났다. 1970년대 유신반대’, 80년대 ‘독재 타도’, 90년대 ‘낙선 운동’, 최근 ‘안티 운동’에서 보듯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뒤흔든 것이 부정(否定) 명제였다. 그러나 이들은 ‘꿈은 이루어진다’와 같은 긍정의 구호를 외쳤다.

레드 콤플렉스를 털어내다

이들은 대한민국과 태극기를 재발견했다. 2002 월드컵을 계기로 텔레비전 중계화면 속의 국명은 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바뀐다. W세대는 월드컵이란 국제적인 행사를 통해 대한민국과 태극기를 자신들의 표현 양식으로 채택했다. 붉은 색과 태극기를 이용한 이들의 다양한 패션은 사회 저변에 앙금처럼 남아 있던 ‘레드 콤플렉스’와 엄숙주의의 금기를 털어냈다. 젊은이들은 한국팀이 경기하는 스타디움의 관중석을 ‘Red hot’이라고 표현했다. ‘빨갱이가 되자’로 오해받을 수 있는 ‘Be the Reds’라는 슬로건은 이제 한국에서 조금도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스타가 없는 대신 팀이 스타가 되다

6월의 기적은 월드컵 4강이라는 유례 없는 성과로 집약된다. 세계적 스타가 없는 한국팀이 4강에 갔다. 평범한 사람들도 긴밀한 협력과 능률적인 조직운영을 통해 1등 집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역시 성적은 중요했다. 한국이 2002년에도 이전에 출전했던 네 차례 월드컵에서처럼 1라운드 탈락의 고배를 들었다면 ‘오 필승 코리아’의 함성도, 수백만 붉은 악마의 길거리 응원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4강 신화를 일군 거스 히딩크가 한국 축구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히딩크, 그 새로운 패러다임

히딩크는 한국 사회에 강한 메시지를 남기고 갔다. 첫째, 기본에 충실하라. 히딩크는 한국 선수들이 양발을 다 사용한다는, 우리조차 몰랐던 장점을 찾아냈다. 그러나 기본 중의 기본인 체력이 약하다고 진단하고 혹독한 훈련으로 선수들을 다그쳤다. 둘째, 시련을 통해 강해진다. 히딩크는 연전연패의 수모를 감수하며 강팀과의 경기를 거듭하며 한국팀에 경쟁력을 부여했다. 셋째, 스포츠는 경쟁이다. 학연ㆍ지연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그는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가 도입한 경쟁 시스템을 통해 김병지ㆍ고종수는 배제됐고, 이운재와 박지성이 일어섰다.

냄비가 식다?

축구 경기에서는 불리한 경기를 하고 있다가도 실점하지 않고 버티다 막판에 한 골만 넣으면 이길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축구와 다르다. 훨씬 더 냉혹하고 엄격하다. 한국 축구로서는 사실 월드컵 이후가 더 중요했다. 냄비는 월드컵이 끝난 뒤 1년 만에 싸늘하게 식었다. 월드컵 경기장은 세계적인 시설이지만 그곳을 채울 콘텐트가 빈약했다. 프로팀이 깃들였지만 관중석은 다시 썰렁해졌다. 주요 선수가 해외 무대로 진출하고 국가대표팀 경기에만 관중이 몰리는 현상이 계속되면서 국내 리그가 위협받았다.

허진석 기자

4강의 교훈 ‘준비된 팀이 성공한다’
이용수 (세종대 교수·KBS 축구해설위원)

2000년 12월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계약을 마친 뒤 히딩크 감독은 강한 어조로 첫째 요구사항을 말했다. 2002년 6월 월드컵 개막을 앞둔 대표팀의 훈련 기간을 최대한으로 확보해 달라는 것이었다. 히딩크는 충분한 훈련 기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동안 월드컵에서 1승을 거두지 못한 대표팀의 전적과 개최국으로서의 16강 진출이라는 지상과제에 대한 염려 때문에 대표선수들의 훈련 차출에 대한 프로구단과 축구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을 얻어낼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대표팀은 넉넉한 훈련 기간을 가질 수 있었다.

대표팀은 2001년 1월 울산 겨울훈련을 시작으로 8단계의 훈련 과정을 통해 월드컵 개막전까지 총 236일 동안 훈련을 했다. 이 기간에 각종 대회 및 평가전을 포함해 37차례의 A매치(17승 9무 11패)를 했다. 강팀과의 경기 경험과 선수들 스스로 경기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한 것이다.

프랑스·체코·잉글랜드 등 강팀과의 경기에 질 때마다 히딩크 감독은 오히려 위로의 말을 건넸다. 언론의 ‘공격’이 계속 되겠지만 우리의 목표는 2002 월드컵이고, 그 상대팀들은 더 강한 팀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지더라도 강한 팀들과의 경기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개최국이지만 북미· 남미·중동·유럽·아프리카 등 전 세계를 돌면서 원정경기를 해 다양한 축구문화를 습득함과 동시에 홈 경기의 이점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선수 스스로 배우도록 했다. 이러한 히딩크 감독의 의도는 선수들에게 잘 전달되었다.
2006 독일 월드컵을 준비하는 현 대표팀은 2002년에 비해 선수 개개인의 능력 면에서는 하나도 부족할 게 없다. 특히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지성·안정환·설기현·이영표·이을용 선수의 기량은 2002년보다 월등히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염려스러운 부분은 수비력이다. 우리보다 전력이 열세인 레바논·베트남·우즈베키스탄 등 예선 상대에게 실점을 했다는 것은 본선을 앞두고 우리 팀이 보강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철저한 준비만이 성공의 열쇠다.

W세대의 심벌 ‘붉은 악마’

‘붉은 악마 = W세대’라는 등식은 논란을 부를 수 있다. 붉은 악마라는 독특한 집단에 대한 해석과 의미 부여는 다양하다. 붉은 악마는 W세대의 심벌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이들의 특징은 자발성ㆍ독창성ㆍ세계성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사회학자 김종엽씨는 ‘2002 월드컵 응원 문화와 상징 체계’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붉은 악마는 붉은 색에 거부감을 갖지 않을 만큼 냉전의식에서 자유롭지만, 동시에 Korea를 Corea로 표기하거나 치우천왕을 끌어들일 만큼 국수적이며,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임을 주장하며 대 미국전 응원에서 반미감정이 분출하는 것을 경계하지만, 동시에 대 터키전에서는 터키가 한국전에 참전했다는 이유로 터키 국기를 경기장에 펼칠 만큼 충분히 정치적이기도 했다. 또 그들은 대 터키전에서는 터키를 북한 침공을 막은 혈맹으로 간주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대 독일전에서는 FIFA의 반대로 불발에 그치긴 했지만 대형 한반도기를 내걸고자 하였고 ‘오 필승 코리아’대신 ‘오 피스(peace) 코리아’를 내걸어 통일을 향한 열망을 표현하려 하기도 했다.”

쪹‘W세대’(World Cup Generation)란 = 2002 월드컵을 계기로 등장했다. 개인의 열정을 대중 안에서 자유롭게 표출하는 세대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이들의 아이콘이다. 문자 메시지를 애용하며 ‘www’(월드 와이드 웹)에 익숙하다. 영어에 관심이 많고 국제적 감각이 뛰어나다. 인생 가치를 물질적 성공보다는 웰빙(Well-being)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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