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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감 넘치는 다큐 … EBS, 안방 사로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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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2014년 방송계에선 EBS의 바람이 거셌다. 왼쪽은 겨울 대구 잡이를 다룬 EBS ‘극한직업’의 한 장면. 케이블 tvN도 예능 ‘삼시세끼’(오른쪽)와 드라마 ‘미생’ 등으로 주목받은 한 해였다. [사진 EBS·tvN]

사내들이 쇳물이 벌겋게 끓어오르는 가마솥을 나른다. 풍랑이 몰아치는 겨울 바다, 고기잡이 배에서 어부들이 그물을 끌어올린다. EBS 다큐 ‘극한직업’ 중 ‘쇳물 주조 공장편’과 ‘겨울 대구 잡이편’의 한 장면이다. ‘극한직업’은 자칫 목숨도 위태로울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이들의 모습에 밀착한다. 2008년 2월 첫 방송을 시작한 ‘극한직업’은 최근 전성기를 맞고 있다. 지난 9월 1일 가을 개편 이후 최근까지 평균 시청률이 3.08%. 지난해 동기 대비 83.3% 껑충 올랐다.

 유난히 지상파가 고전했던 올해 EBS가 의외로 순항하고 있다. EBS는 평일 저녁 시간대(오후 5시~자정) 시청률이 개편 이후 1.43%로 지난해 동기 1.12%에 비해 27.7% 상승했다. ‘극한직업’뿐 아니라 세계 각지를 돌아보는 ‘세계테마기행’, 다문화 가정의 시집살이를 엿보는 ‘다문화 고부 열전’ 등 다큐·교양 프로그램이 선전한 결과다. 두 프로는 가을 개편 이후 시청률이 전년 동기에 비해 각각 59.9%, 18.6% 올랐다.

 지상파 3사의 예능이 유독 힘을 쓰지 못하는 평일 저녁 시간대에 EBS가 돋보이고 있는 것이다. EBS의 인기 프로그램이 예능이 아니라 다큐라는 점에서 ‘신선한 반란’이라 할 만하다. ‘극한직업’의 김경은 CP는 “치열한 땀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생동감에 시청자가 반응한 것 같다”고 말했다.

JTBC도 드라마 ‘밀회’ 등의 작품으로 올해 방송 이슈를 끌어나갔다. [사진 JTBC]

 2014년은 지상파 3사에게 혹독했다. 올 초 열풍을 몰고 왔던 SBS ‘별에서 온 그대’ 이후 평일 미니시리즈에서 이렇다 할 흥행작이 없다. MBC 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와 KBS1 대하 사극 ‘정도전’이 그나마 인기를 얻었다. 아직 고정 시청자층이 존재하는 주말드라마가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평일 예능도 3년여 전부터 시작된 시청률 흉작이 그대로 이어졌다. 유재석·강호동 등 스타 MC의 신작들도 흥미를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정덕현 방송평론가는 “스마트폰이 ‘내 손 안의 TV’로 자리매김한데다 대중의 취향이 날로 다양해지면서 지상파의 아성이 무너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TV 이슈를 선도한 건 JTBC·tvN 등 비지상파 채널이었다. JTBC는 드라마 ‘밀회’, 예능 ‘비정상회담’ 등이 시청자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비정상회담’의 경우, 방영 이후 외국인을 주축으로 내세운 예능이 지상파에서도 우후죽순처럼 등장할 정도로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다. tvN은 드라마 ‘미생’, 예능 ‘삼시세끼’ 등을 히트시켰다. 지상파에선 볼 수 없는 현실적인 세부 묘사가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특히 올해 안방극장을 달궜던 프로들은 모두 시작 전 방송계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던 포맷이었다. ‘밀회’는 소재가 파격적이었고, ‘미생’은 러브 라인이 없다는 등의 이유였다. tvN 이명한 본부장은 “불확실성 속에서 새로운 시도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상파엔 위기감이 감돈다. 최근 KBS가 창사 이래 유례없는 ‘대개편’을 단행한 게 한 단면이다.

KBS는 현재 방영 중인 프로그램 중 21개를 내년에는 폐지하고 이와 별도로 24개를 신설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비지상파 채널의 인기 포맷인 집단토크쇼를 대거 신설하고 드라마에 여전히 방점을 뒀다는 점에서 반쪽짜리 개편이라는 게 평가가 나온다. 한 지상파 국장급 인사는 “지상파의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드는 위기 의식을 내부 구성원 모두 공유하고 있다”며 “지상파의 강점인 보편성을 극대화할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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