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과 질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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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나라는 안내문화의 불모지라고할 만큼 길에서 안내표지판을 찾아보기 어렵다. 간혹 설치해 놓은 표지판마저 방향을 제대로 가리키지 못하고 규격이나 글자가 작아 식별하기도 어렵다.
급격히 늘어나는 차량을 효과적으로 소통시키는 시설이나 안내표지가 태부족이니 교통 혼잡은 가중되고 교통질서는 더 어지럽게 마련이다.
어지러운 교통질서가 교통 사고의 원인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우리 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15명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차량 한 대 당 교통사고율도 세계에서 으뜸이다. 그래서 교통사고의 천국이란 오명을 쓴지가 오래된다.
이처럼 많은 교통사고의 원인으로 흔히 운전자의 부주의를 꼽는다. 물론 운전자가 규정된 속도와 모든 교통규칙을 잘 지킨다면 사고가 줄어들 것은 뻔하다.
그러나 사고의 원인이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곰곰 분석해 보면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를 찾아낼 수 있다. 자동차의 질이라든지 도로여건을 빼놓고라도 안내표지판, 신호 등 같은 교통안전과 관계되는 시설의 확충이 교통사고를 줄이는데 큰 몫을 하마있음은 선진국의 경우가 잘 증명하고 있다.
사실 질서란 시민 모두가 지켜야할 실무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안 지키는데 한두 사람이 지킨다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질서를 지키도록 유도하는 한가지 조건으로 신호 등, 안내표지관 등을 꼽을 수 있다.
일본의 경우 교통사고는 70년을 고비로 눈에 띄게 줄었다. 모든 수송 분야의 장비를 현대화하고 교통안전시설에 막대한 투자를 한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내무부가 거리질서 확립을 위해 신호등과 표지판개선에 착수키로 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조치다.
그러나 내무부가 마련한 방안가운데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사복 경찰을 불문 모든 경찰관에게 단속권을 준 것이 그 것이다.
질서가 정착되기까지 적발 기능을 강화하는 일은 일견 불가피하게 보여지지만 이로 인해 생기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충분한 대비를 해야할 것이다.
지나친 단속이 질서의 정착에 역기능을 할 가능성도 없지 않을 뿐 아니라 얼마나 공정을 기할 지에 대해서도 솔직이 말해 확신을 갖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특히 사복경찰에까지 단속을 시키면 갖가지 시비가 벌어져 도리어 교통혼잡이 가중될 경우마저 예감할 수 있다.
따라서 교통질서 사범에 대한 강력한 단속은 먼저 질서를 지킬 수 있는 여건부터 만들어놓고 그 추이를 보아가면서 펴나가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그리고 현재의 교통경찰의 힘만으로 단속을 하는데 역부족이라면 정복을 한 경찰을 투입하는 것만으로 단속 효과는 거둘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질서란 타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서 확립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신호등이나 안내표지판의 개선 등은 내무부의 소관업무겠지만, 근본적으로 교통사고를 줄이는 일은 경찰의 힙이나 단속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교통부는 물론 건설부동 모든 유관부서가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갖추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가령 사고의 원인이 방향표지판의 잘못에 있다면 경찰이 이를 고쳐야하고, 노면사정 때문이라면 건설부가 나서서 집중적인 투자로 사고가 많은 지역을 줄여나가야 한다.
교통질서의 확립을 촉진시킨 계기는 물론 앞으로 서울에서 열릴 국제적 행사에 있다. 그러나 교통사고의 천국이란 오명을 씻는 일은 바로 우리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일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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