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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인사·예산권 각급 법원에 넘겨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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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이용훈 대법원장 지명자가 9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위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이용훈 대법원장 후보자가 9일 이틀간의 인사 청문회를 마쳤다. 이 후보자는 "재판받는 피고인처럼 떨린다"고 소감을 말했다. 14일 국회 표결에서 통과하면 그는 제14대 대한민국 대법원장이 된다. 이 후보자는 "점심 때 국민을 광범위하게 만나 사법부에 대해 무엇을 요구하는지 직접 듣고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임기 6년 동안 대부분의 점심을 집무실에서 도시락으로 때운 최종영 현 대법원장과 윤관 전 대법원장(12대)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 후보자는 어떤 대법원장이 될까, 새로운 대법원장상을 보여줄 수 있을까. 청문회를 지켜본 입법.사법 관계자들은 "과거 대법원장들과는 다를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다름'에는 기대와 우려가 섞여 있었다.

◆ "법원 문턱 낮아질 것"=한 중견 판사는 "앞으로 법원에서 제도 개선의 큰 바람이 불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가 '국민을 섬기는 법원'으로의 전환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는 9일 "일선 판사들은 법원행정처의 축소를 원한다"며 "5공 때 시작된 처장의 대법관 겸직은 재고돼야 한다"고 말했다.'엘리트 판사들의 경력 관리 코스'라는 지적이 일었던 행정처의 주요 보직을 변호사와 법학 교수 등 외부 인사에게도 공개하고, 대법원장에 집중된 인사.예산권도 과감히 각급 법원에 이양하겠다고 했다. 법원 내부의 일이지만 실현되면 적지 않은 변화다.

재판 과정도 일부 국민의 눈높이로 개선될 것 같다. 그는 "국민은 법원에 가서 말을 하고 싶은데 지금은 통로가 막혀 있다. 그 통로를 넓게 여는 것이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사건 당사자가 직접 판사에게 의견을 충분히 말할 수 있고, 판사는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서 전문 지식을 공급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변호사 시절 형사부 판사들에게 '힘없는 백성들은 아무 소리 못하는데,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다 풀려나가면 국민이 믿겠느냐'고 했다"고 소개했다. 또 "국민이 법원이나 등기소에 왔을 때 불친절하거나 고압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 "사회 통합 최후 보루 역할해야"=이 후보자는 이날 "대법원장은 중립적인 사람이 돼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 관련 소송의 변호인이었던 경력이 재차 논란의 대상이 되자 스스로 아쉬움을 표명한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연정 발언에 대한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의 질문엔 "내각책임제가 아닌데 연정 표현이 적절한가 생각은 들지만, 장 의원을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임명하자면 괜찮은 것 아닌가"라고 답했다.

그는 "정의를 위해 하는 사법부 판결에 대해 권력이 정의를 훼손하려 한다면 과감히 산화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사법권 독립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을 불식시키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방희선 변호사는 "대통령이 최후의 헌법적 질서와 충돌하던 때(탄핵 사건을 의미) 한쪽 당사자의 대리인으로 활동했는데 한국 사회의 연(緣)과 정(情)을 완전히 단절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법부는 사회 통합의 최후 보루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기존 법조계에 대한 신뢰가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왔다. 차병직 변호사는 "현재 법조계에는 이 후보자의 설명과 달리 전관예우가 근절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여야 모두 "통과될 것"=청문회 여당 간사인 우윤근 의원은 "인품이나 능력, 자질 면에서 부족함이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적극적인 찬성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표결 결과에 대해선 "통과될 것"으로 예측했다.

김정욱.김정하 기자 <jw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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