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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곁을 지켜준 천사 … 세월호 자원봉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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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그저 우러나는 마음에 현장으로 달려갔다. 참사 12일째인 지난 4월 27일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묵묵히 음료수를 권하고 있다. [중앙포토]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세월호 참사,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붕괴…. 사건과 사고로 얼룩진 한 해였다. 희생자가 속출했고, 가족은 가슴 저며야 했다. 그 순간, 의지가 되어 준 이들이 있었다. 연인원 5만5000여 명에 이르는 세월호 자원봉사자가 대표적이다. 더불어 지난해 대학 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8번 문항의 오류를 짚어낸 박대훈 전 EBS 지리 강사, 아파트 관리비 감시의 중요성을 일깨워 ‘난방 투사’란 별명을 얻은 배우 김부선을 올해의 사회 부문 새뚝이로 뽑았다.

“우리 애가요, 오늘 밤에 꼭 나올 것만 같아요. 옆에서 기다려 줄 수 있나요.”

 세월호 침몰 6일째인 지난 4월 21일 오후 전남 진도체육관. 희생자 가족으로 보이는 50대 남성이 청소를 하고 구호물품을 나르던 자원봉사자 김기원(64·전북자원봉사센터)씨에게 물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소식 들리면 팽목항에 달려가야 할 텐데 차가 없어요.”

 그 말대로 아이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 하지만 김씨는 그 애절한 눈빛에 두말 없이 지인을 통해 승합차 한 대를 구했다.

 자정까지 소식은 없었다. 꾸벅꾸벅 졸던 새벽 무렵 그 남성이 김씨를 흔들어 깨웠다. “아들을 찾았답니다.” 번뜩 잠이 깬 김씨가 차를 내주자 남성은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세월호 참사로 무너져 내리던 가족들 곁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었다. 연인원 5만5035명이 가족들 곁에 모였다. 자원봉사 전문단체 회원뿐 아니라 회사원·자영업자·주부·학생들도 진도에 왔다. 운영하던 가게 문을 닫고, 직장에 휴가를 내고 주머니를 털어 가족들 곁으로 향했다. 10대 학생도, 70대 노인도 있었다. 탈북자·외국인들도 합류했다. 대구지하철 참사와 천안함 폭침 사건 유가족들 또한 세월호 가족 옆에 머물렀다.

 세월호 가족들은 그들을 ‘소리 없는 천사’라 불렀다.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가족들을 자극할까봐 그저 묵묵히 밥 짓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가족들 부탁을 들어주기만 해서였다.

 진도 주민 30여 명으로 구성된 봉사단체 ‘빵 맹그는 아짐(빵 만드는 아줌마) 봉사단’은 팽목항 천막에서 따뜻한 빵과 김밥·어묵탕·쇠고기죽 등을 나눠줬다.

 진도를 오가는 가족들을 무료로 태운 경기도 안산시 개인택시 기사들도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샴스 사밈(27)과 마하크 파렌기스(28·여)는 4월에 1주일, 5월에 20여 일간 진도체육관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한국정부 장학생으로 국내 대학에 입학하는 혜택을 받았기에 “신세를 갚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샴스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원봉사 발길을 보면서 한국인의 따뜻함을 느꼈다”고 했다.

 낯 모르는 대학생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마음을 모아 진도로 달려오기도 했다. 누군가 인터넷에 ‘세월호 자원봉사 갈 사람은 연락처를 남기세요’란 글을 남겼고, 여기에 연락처를 남긴 학생들이 SNS에 모였다. 20명씩 조를 이뤄 2, 3일 봉사를 하고 다음 조 20명과 교대하는 릴레이 자원봉사를 펼쳤다.

 아직 팽목항에서 실종 가족을 기다리는 권오복(59)씨는 “지금도 네댓 명씩 오는 자원봉사자 분들 덕에 버티고 있다.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시민네트워크 김익한(54·명지대 교수) 공동대표는 “자원봉사자들에게서 우리 사회가 공동선을 위한 시민사회로 진전돼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최종권 기자

◆새뚝이=기존의 장벽을 허물고 새 장을 연 사람을 말한다. 독창적인 활동이나 생각으로 사회를 밝히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 또는 단체다. 중앙일보는 1998년부터 매년 연말 스포츠·문화·사회·경제·과학 분야에서 참신하고 뛰어난 성과를 낸 이들을 새뚝이로 선정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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