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부추기는 '카지노 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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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7일 오후 10시 서울 강남의 한 카페.

넥타이를 풀어 헤친 20~30대 손님 5명이 '룰렛 게임(회전판을 돌려 주사위가 멈추는 눈금을 맞히는 도박의 일종)'을 즐기고 있다. 이들은 미니 스커트를 입은 여성 딜러의 진행에 따라 게임용 칩을 올려놓은 채 '대박'이 터지길 기다렸다. 손님 이모(29)씨는 "술값만 내면 룰렛 등 카지노 게임을 쉽게 즐길 수 있어 자주 찾는다"며 "게임이 잘 풀리면 공짜 술도 얼마든지 마실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술을 마시며 카지노 게임을 즐기는 '카지노 바'가 등장했다.

그러나 일반음식점으로 허가를 받은 이들 업소가 카지노를 미끼로 손님들을 끌고 있어 불법 논란이 일고 있다.

?'룰렛'까지 성행=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직장인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송파.여의도 지역에 7~8곳의 카지노바가 성업 중이다.

또 관광객이 많은 강원도 강릉.동해.평창 등에도 10여 개의 카지노바가 잇따라 생겨났다. 대부분 70~80평이 넘는 넓은 공간에 카지노를 즐길 수 있는 테이블을 5~6개씩 갖추고 있다.

이들 업소는 손님이 술을 주문하면 주문 금액에 해당하는 게임용 칩을 제공하고 있다.

손님은 이 칩으로 '룰렛' '블랙잭' '바카라'등 카지노 게임에 베팅을 하면 된다. 업소마다 카지노 근무 경력이 있는 전문 딜러들이 배치돼 게임 진행을 맡고 있다. 게임에서 이길 경우 획득한 칩의 개수만큼 술값을 할인해 주거나 해당 금액을 마일리지로 적립해 술로 교환할 수 있다.

강원도에 있는 일부 업소는 게임에서 획득한 칩을 상품권으로도 교환해 준다. 상품권은 인근 복권방 등에서 손쉽게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사실상 금전적 이익을 얻기 위한 도박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최근에는 VIP 고객을 유치한다는 명목으로 '포커 전용방'을 제공하는 업소까지 생겨났다.

이 방은 30만원의 이용료를 내고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포커 등 카드 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꾸며졌다.

한 업소 관계자는 "영업장 내에선 현금이 오가지 않는다"며 "별도의 방이나 외부에서 손님들끼리 칩을 돈으로 교환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현금 등 오가면 형사처벌 가능=강원도 평창경찰서는 최근 일반음식점에 게임 테이블을 설치하고 손님들에게 상품권을 제공하는 카지노 영업을 한 혐의(관광진흥법 위반)로 장모(34)씨 등 두 명을 구속했다. 이는 카지노 바에 대한 첫 처벌 사례다. 그러나 일선 경찰들은 "돈이 직접 오가는 것을 확인하지 못할 경우 처벌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한 카페에서 도박 행위를 하는 것은 위법"이라며 "그러나 상품권이나 현금 등이 오가는 순간을 포착하기가 쉽지 않아 단속이 어렵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형사처벌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동부지검의 한 검사는 "현금이 직접 오가지 않더라도 사행성 놀이와 관련된 장소를 제공했을 경우 도박방조죄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춘천=이찬호 기자, 정강현.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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