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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I Report] 아시아 통합과 국제통화기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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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아시아는 최근 수년 간 세계 GDP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세계 성장의 절반을 차지하면서 세계경제의 성장엔진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인상적인 발전은 아시아가 세계경제 속으로 확고하게 통합되어 가는 과정에서, 세계가 원하는 상품을 생산하는 주요 기지로 부상함에 따라 이뤄져 왔다.

이제 세계경제에서 아시아의 역할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아시아 지역 자체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아시아는 지역 금융시장을 국제금융시장 속으로 더욱 긴밀하게 통합시켜야 한다. 아시아는 외환보유액을 확대함으로써 지역경제의 취약성을 성공적으로 감소시킨 바 있다. 그 다음 단계는 각국과 지역 수준에서 보다 역동적인 금융시장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저축과 투자의 흐름을 개선함으로써 지역경제의 취약성을 더욱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금융통합은 싱가포르 통화청(Monetary Authority of Singapore)과 IMF가 공동으로 후원하고, 금융통합 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아시아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주에 싱가포르에서 열린 고위급 세미나의 주제로 다루어졌다. 활발한 의견 교환이 이뤄진 이 세미나에서 IMF는 IMF 내에서 아시아 출신 대표자의 비중을 높일 계획을 밝히는 등 아시아의 지역통합과 세계경제 통합에 대한 IMF의 강력한 지지의사를 강조했다.

금융통합이 아시아와 전 세계에 이익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이는 아시아가 세계경제 속으로 통합되어 가는 과정에서 거쳐야 할 다음 단계에 해당한다. 지역과 세계 수준에서 일어나는 금융시장 통합은 금융시장의 깊이를 키울 것이며, 외부 충격에 대한 아시아 경제의 대응력을 강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또, 아시아의 방대한 저축자산을 지역 투자 활용을 비롯해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울러 이를 통해 아시아는 세계경제에 보다 균형 있게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시아 지역의 금융통합보다 각국 금융시장의 발전이 월등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기는 했지만, 아시아 국가들이 지역 금융통합 부문에서 이미 상당한 진전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다. 국가 수준에서는 아시아 국가들이 투자등급 유가증권의 발행을 촉진하고, 기업지배구조를 강화하며, 기관투자가의 역할을 제한하는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자본시장을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역 수준에서는, 금융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 채권시장의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아세안+3 로드맵, 양자 간 통화스와프 협정의 치앙마이 네트워크 등을 그 대표적 예로 들 수 있다. IMF는 이러한 노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이를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

지역통합의 확대는 아시아의 세계시장 통합을 희생시키면서 이뤄져서는 안 되며, 지역통합의 확대가 반드시 세계시장 통합을 희생시켜야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일어난 아시아의 경제적 성공은 아시아가 세계경제에 대한 참여를 확대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12월 홍콩에서 열릴 WTO 도하무역협상이라는 결정적인 전기를 향해 국제사회가 나아가는 동안, 아시아는 지도적 역할을 담당할 기회를 맞고 있다. 도하협상이 성공적으로 타결되면, 세계시장의 개방이 더욱 진전되고 다자 간 무역체제가 더욱 강화되면서, 모든 개발도상국에 큰 이익이 돌아갈 것이다. 이러한 지도력은 아시아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울러 현재 아시아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실제 역할이 IMF와 같은 국제기구에서 아시아가 가지는 발언권과 대표자의 수에 반영되어야 한다. 이 달에 발간될 IMF 중기전략 리뷰는 이 문제를 진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현재 IMF와 같은 국제기구에서 아시아 출신 대표자의 비중은 아시아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나는 국제사회에서 아시아의 발언권이 강화돼야 한다는 아시아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굳게 믿고 있다.

IMF 수뇌부는 아시아의 비중을 적절히 반영하기 위해 대표자의 수를 조정해야 한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이 문제는 여러 이해 관계자의 이익을 건드리기 때문에 복잡한 문제지만 반드시 다루어야 하는 문제이고, 또 미루기보다는 조속히 다루는 것이 이익이 되는 문제다. 국제사회는 이 문제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IMF에서 아시아의 역할이 커지면 그 이익이 아시아에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금융의 협력 강화를 통해 세계의 이익으로도 돌아간다. 정치적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문제다.

IMF는 오랫동안 아시아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IMF의 중기전략 또한 이 관계가 향후 어떻게 발전하고 깊어질 것인지를 강조하고 있다. 선진국과 관련해서, 우리는 정책 논의와 자문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것이며, 특히 국가 정책과 개발이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둘 것이다. 신흥시장과 관련해서는, 우리는 대화, 정책 자문, 기술적 지원 등을 통해 개혁의제의 진전을 계속 지원할 것이다. 후진국과 관련해서, IMF는 빈곤 경감을 촉진하고, 유엔 밀레니엄 개발목표를 달성하고, 외부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IMF와 회원국 간의 관계는 항상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조정돼야 한다. 세계 경제협력에서 아시아의 역할이 커지면서, 향후 아시아와 IMF 간에 파트너 관계를 확대할 기회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동아시아 10개국 외환보유액이 전세계 3분의 2
갈수록 커지는 아시아의 힘

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을 본격화하고 있다.

1997년 이후 IMF 구제금융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했던 한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외환보유액 축적과 공동통화 창설 노력 등 금융위기 재발을 위한 공동장치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97년 말 외환보유액이 100억 달러 미만에 불과했던 한국은 수출증대 노력을 통한 지속적인 달러 축적으로 지난 6월 말 현재 2060억 달러의 외화를 보유한 아시아 5위권 외환보유국으로 발돋움했다. 한국보다 앞서 외환위기를 겪었던 인도네시아.태국 등 동남아 국가들의 외환보유액도 외환위기 직후에 비해 30% 이상씩 늘었다. 특히 같은 기간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급속한 경제성장에 힘입어 4배 이상 불어났다.

아시아개발은행에 따르면 동아시아 10개국이 보유하고 있는 외환은 전 세계 중앙은행 외환보유액의 3분의 2가 넘는 2조50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에선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보유액이 이미 적정 규모를 넘었으며 미국 등 선진국들의 채권시장을 교란할 수 있는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은 든든한 외환보유액을 발판으로 금융위기 재발방지를 위한 각종 공동활동에 나서고 있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과 한.중.일 3국은 역내 금융위기 발생시 공동 대응할 수 있는 통화스와프 규모를 현재의 두 배(790억 달러) 규모로 확대하기로 했다. 위기발생시 지원도 각국이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것에서 공동 결정, 공동 지원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환율 안정 등을 위한 동아시아 공동화폐 창설도 논의되고 있다. 금융전문가들은 "한국과 중국.일본 등 3국이 주도하는 공동화폐 창설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최근 아시아 국가들은 IMF에 의사결정권한(투표권)을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걸맞게 늘려줄 것을 정식으로 요구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이제 제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의 요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현재 전체의 0.76%에 불과한 한국의 투표권은 1.84% 수준으로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일본은 6.22%→8.47%, 중국은 2.98%→7.56% 등으로 한.중.일 3국의 영향력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선 아시아 국가들의 영향력이 높아지는데 대해 우려를 표하는 시각도 있다. IMF 등 국제금융기구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영향력이 커질 경우 이를 질시하는 선진국들과의 갈등으로 세계 경제에 주름이 지워질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임봉수 기자

8년간 스페인 경제 사령탑 … 성장 이끌어

로드리고 데 라토 IMF 총재는=1996~2004년 스페인의 경제담당 부통령 겸 경제장관을 지냈다. 시장지향적인 개혁주의자로 평가받는 라토 총재는 스페인 경제의 사령탑을 맡는 동안 실업 감소, 인플레이션 완화, 재정적자 축소 등 많은 성과를 이뤄 스페인 경제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라디오 방송국을 포함해 다양한 사업체를 소유한 스페인의 부호 집안에서 49년 출생한 그는 마드리드의 컴플루텐스 대학에서 법학부를 졸업한 뒤 미국 버클리대에서 경영학석사 학위, 컴플루언스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지난해 5월 호르스트 쾰러 전 총재가 독일 대통령선거 출마를 위해 사임하자 영국.아일랜드 등의 지지를 받아 IMF 총재에 선출됐다. 8일부터 이틀간 제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재무장관회의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그는 " 한국은 카드 부채의 터널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고 있다"며 "경제 성장률은 올해 4%를 기록한 뒤 내년에 5%로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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