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중기 희망 보고서] 국내 첫 타지않는 금고 낙산사 화재 때 진가 발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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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개는 70살의 수명을 누리기 위해 40살에 부리를 깨고 발톱을 뽑아내는 갱생의 아픔을 거쳐야 합니다. 우리 회사는 지금 그 과정의 끝에 있습니다."

선일금고㈜ 김영숙(51.사진) 사장에게 지난 9개월은 거듭나려는 솔개처럼 진한 아픔을 겪은 시간이었다. 남편이며 창업주인 김용호 회장이 지난해 말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뜨면서 회사를 혼자 도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은행은 물론 거래처까지 모든 관계자에게 선일금고가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인식시켜야 했다. 김 회장이 세상을 뜨기 전까지 김 사장이 재무와 총무 등 회사 관리부문을, 김 회장은 기술개발 등 제조부문을 맡아왔다.

"처음엔 회사를 남에게 넘기고 조용히 살까도 생각해봤지만 남편이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겼던 회사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내 손으로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키울 것입니다".

다행히 회사는 빨리 정상을 되찾았다.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수출 주문이 지난해보다 50% 가량 늘었다. 주문을 생산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올해 수출 목표 1000만달러는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사장은 "우리 회사는 작지만 차돌같이 단단한 회사"라고 말했다. 연 매출(2004년) 110억원 중 80%가 수출로 올린 실적이다. 전세계 100여개국에 금고를 수출하고 있다. 국내 금고시장에서도 정상을 다투고 있다. 1980년대 초 국내 처음으로 불에 타지 않는 금고를 생산한 회사가 선일금고다.

김 사장은 "지난 4월 낙산사 대형화재는 보물 479호 동종마저 녹아내릴 정도였지만 현장에서 발견된 우리 제품은 멀쩡해 그 속의 귀중품이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회사와 집안의 기둥이었던 남편을 잃었지만 그래도 외롭지 않다. 두 딸이 김 사장 옆에서 회사 경영을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다. 큰딸인 은영(29)씨는 대학(고려대)에서 제어계측공학을 전공했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조담당 상무를 맡고 있다. 대학(이화여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둘째딸 태은(27)씨는 해외영업팀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의 선일금고는 고(故) 김용호 회장을 빼고는 말할 수 없다. 김 회장은 6.25전쟁 통에 어머니와 누이를 잃고 13세의 나이로 전쟁고아가 됐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던 김 회장은 10대 시절을 밑바닥 생활로 보내야 했다. 금고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세 때다. 집 부근 금고 제조회사(중앙금고)에 "밥이라도 먹여달라"며 들어간 것이 지금의 선일금고로 이어졌다. 김 회장은 고물상에서 산 고장 난 금고를 해체하고 조립하기를 수십 번 되풀이 하면서 기술을 익혔다. 독일과 일본의 금고회사에서 선진기술을 익히기도 했다.

김영숙 사장에게 김 회장 얘기를 물었다. 이내 눈자위가 촉촉이 젖어들었다. "남편은 가정보다 회사를 먼저 생각한 사람이었죠. 야속한 마음에 원망도 많이 했지만 이제는 남편의 열정을 이어가기 위해서도 회사를 세계 최고의 금고회사로 키워낼 겁니다".

글=최준호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 선일금고는 … (2004년 기준)

▶창업:1973년 ▶직원수:140명

▶매출:110억원 ▶수출 비중:80%

▶세계시장 점유율:9.9%(4위)

▶수상 / 경력

1987년 100만달러 수출의 탑 수상

1997년 석탑산업훈장 수상

1999년 내화금고의 내화.내충격 UL 규격인증 획득

2004년 한국 품질경쟁력 우수기업 보안장비부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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