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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결정 싸고 또 진영 싸움 … 이럴 때 통진당 탄생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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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중앙선관위는 22일 오전 경기도 과천 중앙선관위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통합진보당 소속이었던 비례대표 광역의원 3명과 비례대표 기초의원 3명 등 총 6명의 지방의원에 대해 의원직 상실을 의미하는 ‘퇴직’ 결정을 내렸다. 이인복 중앙선관위원장(왼쪽)이 이날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권호
정치국제부문 기자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국민 반응은 한마디로 통쾌하다는 거다. 앓던 이가 빠진 것 같았다, 박근혜 정부가 아니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냈다고들 하더라.”(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 당 최고위원회의)

 “정당 해산이라는 극형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최후의 심판이었어야 한다. 헌재 구성 방식에 근본적 한계가 있는 만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 당 비상대책위원회의)

 지난 19일 한국 헌정사 최초로 헌재에 의해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뒤 월요일(22일) 정치권의 풍경을 대변하는 말들이다. 우파는 통쾌하다고 했고 좌파는 헌재 개선론을 들고 나왔다. 새누리당 당사에선 안도감도 감지됐다. 그도 그럴 것이 ‘문건 파동’으로 수세에 몰려 있던 상황을 반전시킬 이슈가 나왔으니 말이다. 새정치연합의 분위기는 더욱 미묘했다. 통진당은 지난 19대 총선 당시 새정치연합의 ‘야권 연대’ 파트너였다. 문건 파동으로 유리해진 국면이 일거에 뒤바뀐 데 대한 아쉬움과 개탄이 뒤섞였다. “헌재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이긴 하지만 민주주의의 기초인 정당 자유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 (헌재 결정으로) 비선실세 국정농단이 덮어질 거라고 기대해선 안 된다”는 문희상 비대위원장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정치권만 그런 게 아니다. “국회 안에 반역 정당이 생기지 못하도록 미리 법적 조치를 해야 한다”(바른사회시민회의)는 보수단체의 으름장, “정당해산 결정은 헌법재판관들의 폭력”(참여연대)이라는 진보단체의 분노가 우리 사회를 양분하고 있다.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이 빚어내는 이런 풍경, 이게 2014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헌정 사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부끄럽게도 우리는 ‘제도권 정당의 해산 결정’이라는 사건이 갖는 의미를 이성과 합리로 논쟁하기보다 온통 진영싸움만 하고 있다.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는 ‘원탁회의’의 원로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참석자들은 “해산 결정을 내린 헌재의 논리는 허구, 제2의 유신이 올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당이 읍소해야 할 대상은 재야의 원로가 아니라 지지층이고 여론이어야 한다. 이날 참석자들에게는 헌재의 결정에 찬성한다는 63.8%의 여론(본지 22일자 1면)은 ‘남의 얘기’일 뿐이다. 우리 주변 ‘장그래’의 손을 잡아주길 원하는 좌파·진보 지지자들의 바람도 뒷전으로 밀릴 따름이다.

 통진당의 뿌리는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이다. 2004년 민노당은 13.1%의 지지율로 17대 총선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 뒤 10년 진보진영은 어떻게 분열의 정치를 펼쳐왔는가. 잘못은 통진당을 지지하지 않은 야속한 국민에 있는 게 아니다. 대중정당의 기치를 내걸고 제도권에 뛰어든 진보정치인들이 보통의 국민과 멀어진 데 있다.

 통진당 해산 결정을 놓고 보수진영도 고소해하고만 있을 일이 아니다. 극단 정치는 보수진영에도 있다.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으로 진보정치가 없어지지도 없앨 수도 없다. 진영싸움이 판치는 극단의 정치지형 속에선 제2의 통진당은 언제든 다시 생겨난다. ‘종북’이란 낙인만으로 종북이 사라지지 않는 이치와 같다. 이념 대결, 정책 대결의 이성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은 보수든 진보든 성찰해야 할 순간이다.

 헌재가 마치 보수 대 진보, 우파 대 좌파의 대결장에서 승패를 가름한 것 같지만 사실 헌재는 1980년대 민주화의 열망으로 탄생했다. 유불리에 따라 승패를 논할 대상이 아니다. 진영논리에 매몰돼 불복을 외치거나 완장을 차면 역사는 누구에게나 도돌이표가 된다.

글=권호 정치국제부문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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