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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웅의 오! 마이 미디어] 비현실적인 드라마 '뉴스룸' 언론의 현실 더 잘 드러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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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뉴욕타임스의 ‘혁신보고서’에 질린 분들. 버즈피드 성공 방정식에 무심하고 싶은 분들. 우리 언론 현실에 좌절한 분들. 아니면 이꼴 저꼴 다 보기 싫고 그저 좋은 드라마 한 편 보고 싶은 분들. HBO 드라마 ‘뉴스룸’을 보시라. 시즌3를 끝으로 종영한 이 드라마를 구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구해 보시라.

 케이블방송사의 메인 뉴스가 주인공인 드라마다. 앵커맨과 프로듀서가 나오고, 미디어 경영자와 애송이 기자가 나온다. 그리고 묻는다. 좋은 뉴스란 무엇인지를. 시청률과 경영진의 압박, 정보원과 동료 언론인의 속임수, 시청자의 무관심과 정치인의 과도한 관심이 교차되는 가운데 어떻게 좋은 뉴스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준다. 또한 어떻게 망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내가 보기에 비평가들의 염려와 칭찬을 동시에 받았던 시즌1은 혼란스러운 감이 없지 않았다. 드라마를 언제까지 이어나갈지 불분명했던 시즌2의 이야기들은 재미있었지만 분절적이었다. 단 6개 에피소드로 구성된 시즌3에 와서야 모든 계기가 하나로 모여 유장한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 궤도에 들어섰구나 싶었는데 아쉽게도 끝이란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뉴스룸’은 지난 2년간 25개 에피소드에서 방송 저널리즘이 겪을 만한 거의 모든 일화를 다루었다. 정치 현실이 양극화되는 데, 언론은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하나? 중심이라는 게 가능하기는 한가? 정치인의 영향을 받는 경영진의 압박에 보도국장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정부의 기소 위협과 시민의 궁금증 사이에 기자는 어찌해야 하나?

 웃기고 울리는 에피소드들이 모여 하나의 정신을 드러낸다. 이 저주받은 태생인 뉴스라는 놈은 하루도 편하게 만들어지는 날이 없고, 한 번도 구설 없이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뉴스는 계속된다. 매일 마감이고, 매일 다시 시작이다. 언론인이란 이런 끝도 없는 일을 하는 자들이다. 그것도 매번 잘하려 하는 자들이다. ‘뉴스룸’의 뜬금없는 결말은 이 정신을 훌륭하게 구현했다.

 미국 드라마 비평가들이 보기에 ‘뉴스룸’이 묘사한 방송사 보도국은 현실적이지 않단다. 배경은 과거 네트워크 뉴스가 전성기일 때를 연상시키며, 언론인들은 과도하게 논쟁적이고 현명하다. 심지어 미디어 경영자조차 구식으로 보인다. 요즘 언론계가 이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평가들이 원하는 현실적 묘사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에 치이고, 시청률에 굴종하고, 정치에 얽매이고, 언론 매체로서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작금의 언론 현실을 생각해 보자. ‘뉴스룸’이 묘사하는 방식은 비현실적이지만 본질에 닿는 ‘낭만적 전형화’를 따른다. 그래서 추레한 현실보다 현실적 효과를 발휘한다.

 이 드라마의 제작자인 아론 소르킨은 과거 ‘웨스트윙’에서 비난과 조롱의 대상인 정치인을 경탄과 존경의 대상으로 만들어 제시했다. 이번에는 냉소와 의심의 대상인 언론인을 새롭게 묘사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언론인들은 소로킨이 그들에게 뭔가 가르치려 하는 듯해 거슬렸을 것이다. 한국 언론인은 다른 이유로 이 드라마를 보면서 거북해할 것 같다. 어려운 시절에도 이상을 굽히지 않는 돈키호테 같은 언론인들이 실존한다는 현실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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