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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리 물안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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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수리 물안개를 본 적이 있는가.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조용히 걸음을 옮기는 강물 위로 짙고 길게 드리운 양수리 물안개.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큰 가을이나 초봄 새벽 경춘가도를 타고 가면 팔당댐 상류까지 강변을 휘감은 물안개를 볼 수 있다.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일대 한강물 위로 피어오르는 새벽 물안개는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보는 게 가장 운치 있다. 두물머리는 두 물(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큰 강(한강)을 이루는 곳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옛 나루터다. 이곳에 서면 수령 400년이 넘었다는 느티나무와 호수처럼 잔잔한 강에 떠 있는 빈 황포돛대, 물안개 사이로 갈대 무성한 작은 섬이 보인다. 강 건너 동네(퇴촌면)와 산은 물안개에 가려 희뿌옇다.

양수리 물안개는 물론 자연이 빚어낸 작품이지만 그 장관은 공짜로 보는 것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것을 돈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양평군에 물어봤더니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계획은 없다고 한다. 일대가 상수원보호구역이라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아서란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보면 상수원을 보호하면서 관광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나 싶다.

아무리 물안개가 아름답기로서니 이른 새벽 그것 하나만 보러 가기엔 발길이 무거울 것이다. 1박2일 코스로 개발하면 어떨까. 새벽 물안개를 보기 전날 저녁 노을에 물든 한강을 배경으로 공연을 한다. 클래식도 좋고, 재즈도 좋고, 인기가수 공연도 좋다. 개그 콘서트도 괜찮을 것 같다. 공연이 끝난 뒤 가족.연인과 함께 전망 좋은 강변 카페에서 향기 좋은 차 한잔과 함께 깊어 가는 가을밤의 정취를 흠뻑 맛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다음날 새벽 물안개를 본 뒤엔 다산 정약용 유적지 등 주변 관광도 곁들이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나. 황포돛대를 타고 직접 물안개 속으로 노를 저어가는 체험관광도 생각해 볼 만하다. 관광객들이 하룻밤을 묵을 경우 숙박비와 인근 식당 등 지역에 돈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낮에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도 감흥을 느끼게 인근 창고 등을 개조해 물안개 사진이나 그림을 상설 전시할 수도 있다. 정기적으로 물안개 촬영대회를 여는 것은 어떨까.

뛰어난 경치, 유서 깊은 문화유적은 그 자체로는 관광상품이 될 수 없다. 양수리 물안개가 보기 좋지만 그대로 놔둬서는 절대로 돈이 안 된다. 국내 최고의 유적지인 경주에 해마다 관광객이 줄어드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농촌체험관광의 대표적 성공 케이스로 꼽히는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의 토고미 마을엔 8월 13일 색다른 공연이 있었다. '논두렁 재즈콘서트'다. 보이는 거라곤 산과 논밖에 없는 이 오지 마을에 재즈공연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500여 명의 관객이 모였다. 마을주민과 민박객이 대부분이었고, 이 마을 농산품을 구입하는 단골 고객 가족도 불렀다. 공연 기획은 주민들이 했다. 유명 재즈 연주가와 가수는 물론이고, 이 마을 출신 피아니스트도 초청했다. 무대는 논 위에 마련했다. 무대 바닥과 방음장치는 모두 투명유리로 했다. 객석에서 볼 때 연주자들이 마치 고개 숙여 익어가는 벼 위에서 공연하는 것처럼 보였다. 풀벌레소리와 함께 오지 마을의 한여름 밤 재즈공연은 흥분과 감동으로 깊어 갔다. 토고미 마을의 재즈공연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선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무대를 논 위에 투명하게 만들어 청정 자연을 강조했다. 이 마을에 휴가를 온 손님들과 단골고객들에 대한 서비스 정신도 빛났다. 한여름 밤 잊지 못할 추억을 고객들에게 제공한 것이다. 다음으로 주민들 스스로 문화를 접하면서 변하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주5일 근무제와 전국 곳곳으로 확장 개통되는 고속도로의 영향으로 농촌관광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수요는 경쟁을 유발한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농촌관광은 어디를 가나 비슷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가령 어느 마을에 황토염색 체험이 인기라면 곧바로 다른 마을에서 똑같은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남들 따라 하기로는 아이디어 전쟁에서 이겨내지 못한다. 다양성과 차별화, 이것이 농촌관광의 핵심이다.

정재헌 사건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