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론·개헌론 말려들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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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표의 회담에 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5일 오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었다. 박근혜 대표가 의원총회에 참석하며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5일 오후 국회 예결위장. 한나라당 의원들이 의총 참석을 위해 속속 몰려들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표의 회담에 관한 의견을 수렴하는 회의다. 의총 직전 소장개혁파 의원들의 모임인 '수요모임'은 긴급 회의를 열었다. 수요모임의 남경필.박형준 의원 등은 연정론에 대한 '불가' 당론에 반대하지 않지만 개헌 문제는 당이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들은 의총에서 그 같은 얘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큰 싸움을 앞둔 장수(박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생각에서다. 남 의원은 "박 대표가 이미 회담을 수락했고, 연정에 대한 당의 방침도 분명한 만큼 이날 의총은 사전 정지용 정도"라고 말했다.

남 의원의 발언은 이날의 의총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의총에선 일부의 우려와는 달리 당내 갈등을 빚고 있는 당 혁신안에 대한 언급이 전무했고, 회담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거의 없었다.

이날 한나라당 의원들이 내놓은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연정론에 결코 말려들지 말고, 개헌 논의에 발을 담그지 말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회담이 야당과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좋은 기회라 여기면서도 박 대표가 정치적 '고단수'인 노 대통령에게 휘둘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듯했다.

김문수 의원은 "소연정은 중대선거구제를, 대연정은 개헌을 목표로 한 것"이라며 "개헌론을 반대하고 통일 외교 문제에 대해 얘기하라"고 주문했다.

진수희 의원은 "연정론은 최장집 교수의 주장처럼 노 대통령이 정치적 알리바이를 위해 낸 것"이라며 "이는 야당 교란과 국민 혼란을 불러 온다는 점을 분명히 말해 달라"고 주문했다. 김재원 의원은 "노 대통령은 연정에는 의지가 없고 내각제 개헌을 통해 계속 집권 여당으로 남는 것에만 목적을 두고 있다"며 "이번 회담을 국민에게 내각제 음모를 알리는 계기로 삼자"고 말했다. 박진 의원은 "대통령에게 청와대 참모진 교체를 요구하라"고 주장했다.

회담 시기와 개최에 대한 소수 의견도 있었다. 한선교 의원은 "대통령의 해외 순방(8~17일)이 끝난 뒤 결과를 설명듣는 식으로 회담하자"고 했고, 배일도.박계동 의원은 "회담을 안 했으면 좋겠지만 가더라도 아무 말 하지 말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현란한 표정에 말려들 수 있으니 15초 이상 대통령을 똑바로 응시하라"거나 "대통령이 총리직을 제의해 오면 '밖에서 도와줄 테니 임기를 끝내시라'고 말하라"는 '황당성' 주문도 나왔다.

박 대표는 "그간 노 대통령이 연정에 대해 e-메일이나 언론을 통해서만 말해 왔는데 이번에 직접 만나서 불가 방침을 밝히고 매듭을 짓겠다"며 "국민의 생각을 전하는 국민의 대표로 다녀 오겠다"고 마무리했다.

이가영 기자

회담 어떻게
배석자 3명씩 대화는 둘이서

청와대는 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회담은 청와대 본관 2층 '백악실'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 집무실 옆에 위치한 백악실은 대통령의 소규모 오.만찬 행사에 주로 사용되는 곳이다. 참여정부 들어 노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내외 초청 만찬을 백악실에서 열었다.

여야 대표 및 지도부와도 주로 이곳에서 식사하며 대화했다. 백악실에서 밖으로 내다본 풍광이 좋아 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창밖에 보이는 경치가 가장 좋은 곳"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과 박 대표는 원형 테이블을 놓고 연정 등 국정 현안을 논하게 된다. 회담 분위기를 딱딱하지 않고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노 대통령을 기준으로 상석인 오른편에는 박근혜 대표가 앉게 되며, 시계방향으로 청와대 이병완 비서실장, 김병준 정책실장, 김만수 대변인,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 유승민 비서실장, 맹형규 정책위의장이 자리한다. 대화는 주로 노 대통령과 박 대표 사이에서만 이뤄지고, 나머지 배석자들은 증언 및 기록에만 충실할 것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오후 2시에 회담이 열리는 관계로 식사 대신 우리 전통차가 준비될 예정이다.

김정하 기자

"경제 민생 걱정 많이 하니 연정 통해 함께 문제 해결"
노 대통령, 입장 밝혀

노무현 대통령이 7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의 청와대 회동에 임하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5일 개최된 수석.보좌관회의에서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대연정 제안에 대해 "연정은 포용과 상생 정치의 최고 수준에 있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분열구도를 극복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가 민생.경제 우선을 내세운 것과 관련, 노 대통령은 "물론 민생경제가 매우 중요하다"며 "그러나 우리 정치가 욕설과 야유, 싸움질로 얼룩진 소모적 정쟁과 대립의 문화를 극복하지 않고는 민생경제를 올바로 다뤄 나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그간 "경제에 무관심한 대통령은 단 한 사람도 없다"(8월 31일)고 했었다. 또 "시어머니는 '밥 짓기 바쁜데 무슨 부엌 고치기냐'고 하지만 며느리는 '부엌 설비가 잘 돼 있어야 밥짓기가 잘된다'고 대답할 것"이라고 비유해 왔다.

노 대통령은 "그간 여야가 만나면 상생 정치를 수차례 다짐해 왔다"며 "그러나 이뤄진 것은 없으며 빈말 정치로 신뢰만 떨어뜨려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나의 연정 제안은 한나라당의 요구에 대한 응답"이라며 "경제 민생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니까 연정을 통해 함께 문제를 해결해 보자고 제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역주의, 특히 정치의 분열구도만이라도 좀 해소할 수 있게 선거제도를 고쳐 달라는 게 나의 요구"라며 "다행히 박 대표가 만나자는 제안을 수락했으니 진정한 의미의 대화와 타협을 한번 해 볼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훈 기자 <choihoon@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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