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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과 달라이 라마

중앙일보

입력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노벨평화상 수상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2~14일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했다. 교황청은 그의 방문 하루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달라이 라마를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여러 말이 나오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중국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교황이 달라이 라마를 피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교황청 대변인은 “달라이 라마를 존경한다. 하지만 교황은 노벨평화상 수상자 회의에 참석하는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을 것”이라며 “이는 아주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교황청 관계자는 “(달라이 라마를) 만나지 않은 것은 이미 고통을 받고 있는 중국 내 가톨릭 신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는 옹색한 변명이 아닐 수 없다. 종교 전문가들은 또 다른 분석도 내놓고 있다. “가톨릭 교회의 입지는 북미와 유럽에서 점점 위축되고 있다. 이 때문에 교황청은 급속한 경제발전을 보이고 있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그 세력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황청이 현실적 이익을 앞세워 달라이 라마를 만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달라이 라마는 1959년 중국의 지배에 저항하다 인도로 망명했다. 천안문 사태가 발생했던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당시 노르웨이 노벨평화상 위원회는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인들의 자유를 위해 투쟁해 왔다. 그는 폭력에 반대하며 인내와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티베트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수상자 선정 배경을 밝혔다. 노벨상을 받은 이후 달라이 라마의 사상은 널리 알려졌으며 그는 전세계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임자인 베네딕토 16세도 이런 달라이 라마를 2006년 만났다. 종교지도자로서 인류의 평화를 증진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바티칸의 태도는 크게 달라졌다.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할 당시 그의 전용기는 중국 영공을 통과했다. 교황은 비행기 안에서 중국에 축복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국제사회에서 크게 부상한 중국의 위상을 감안한 행동이었다.

중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 경제대국이다. 적지 않은 중국인들이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아직도 대다수는 가난에 내몰려 있으며 자유로운 의사 표현에도 제약을 받고 있다. 많은 중국인들은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받고 있지만 제대로 저항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인권 침해 상황조차 외부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홍콩에서 민주화 시위가 발생했을 때도 이를 본토인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점점 깊어지고 있다. 올해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됐으며 원화와 위안화도 직접 거래가 가능하도록 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이며 중국인 관광객들은 한국의 관광산업과 항공사들에게는 최대 고객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한국 정부가 달라이 라마를 만나지 않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경제 협력 파트너의 다각화가 필요하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나 동남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현실적 이익 때문에 불편한 진실에 고개를 돌리는 우(愚)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다.

버틸 피터슨 보스턴 글로브 등 미국의 주요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이집트 미국상공회의소가 발간하는 ‘월간 비즈니스’ 편집장을 지냈고 현재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버틸 피터슨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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