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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층만 보는 비밀언론 … 핑퐁외교도 '내참' 이 디딤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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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972년 2월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왼쪽 사진 오른쪽)이 마오쩌둥 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2008년 5월 원자바오 전 총리(오른쪽 사진 왼쪽)가 쓰촨 대지진 현장을 방문해 생존자 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중국의 공식 정보지 ‘내참’은 핑퐁외교와 지진 복구의 전령사 역할을 수행했다. [중앙포토]

1971년 4월 4일 오전 제31회 일본 나고야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선수촌. 19세의 미국 대표선수 글렌 코원이 훈련장행 대표단 버스를 놓쳤다. 당황한 코원 앞에 버스 한 대가 멈춰 섰다. 중국대표단 버스였다. 61, 63, 65년 남자 단식을 제패한 세계챔피언 좡쩌둥(莊則棟·1940~2013)이 버스에서 내려 코원을 태웠다. 선수 겸 부단장이던 좡은 코원에게 황산(黃山)이 수놓인 항저우(杭州) 실크를 선물했다. 반미 정서가 팽배하던 문화대혁명 시기 좡의 행동은 파격이었다. 다음 날 코원은 좡을 찾아와 평화를 상징하는 3색 셔츠를 선물했다.

 현장의 외신기자들이 코원에게 물었다. “중국 방문을 원하나.” 코원은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신화사 기자 역시 기사를 작성해 베이징 본사에 송고했다. 일반 보도용 기사는 아니었다. 중난하이(中南海·중국의 최고 권부)에 직보(直報)되는 ‘참고자료(參考資料)’용 기사였다. ‘대참고’로 불리던 ‘참고자료’는 신화사가 발행하는 고급 정보지로 현재 ‘내참(內參·내부 참고의 준말)’의 전신이다. 보고를 접한 마오쩌둥(毛澤東)은 좡이 “탁구뿐 아니라 외교까지 잘하는 정치 두뇌를 갖춘 인물”이라며 미국 선수단을 초청하라고 지시했다. 미국 선수단은 4월 10일 베이징에 도착했다. 이듬해 2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방중으로 이어진 핑퐁외교에 ‘내참’이 다리를 놓은 셈이다.

 2008년 6월 쓰촨(四川)대학의 장샤오핑(姜曉萍) 공공관리학원 원장은 대지진의 피해를 입은 현장을 조사했다. 장 원장은 복구정책과 현지의 수요가 어긋나는 모습을 곳곳에서 목격했다. 학교로 돌아온 그는 팀을 꾸려 추가 조사를 진행해 ‘쓰촨지진 재해지역 공공수요 조사와 잠재 사회 리스크 분석’이란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신화사 내참’과 당 중앙당교에서 간행하는 ‘사상이론 내참’을 통해 중앙정치국 위원들에게 전달됐다.

 이미 현지를 시찰했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이 내참에 주목했다. 핵심 부분에 밑줄을 치고 여백에 지시사항을 친필로 썼다. 이는 관계부처로 하달됐다. 내참이 총리 시행령으로 바뀌었다. 중국에서 내참을 활용한 통치를 뜻하는 ‘내참치국(內參治國)’의 전형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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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참은 중국 특유의 정보 공유 시스템이기도 하다. 북·중 관계 전문가인 국내 기업연구소의 모(某) 박사는 국제 세미나에서 중국 전문가들과 마주칠 때마다 조심스럽다. 중국 관변 연구소의 중진 학자로부터 한국 학자들이 현안 정보에 너무 어둡다는 지적을 받고 나서부터다. 이처럼 중국의 핵심 전문가들은 내참 시스템을 통해 현안을 공유한다. 이에 반해 국내 학자는 언론 보도 이외의 심층 정보를 접하기 어렵다.

 중국 최고 지도자의 일과는 보통 내참 확인으로 시작된다. 덩샤오핑(鄧小平)도 내참을 애독했다. 미 하버드대 에즈라 보걸 명예교수가 집필한 『덩샤오핑 평전』에 따르면 덩은 오전 9시에 사무실로 출근한 뒤 대략 15종의 신문과 외국 매체의 주요 기사를 번역한 ‘참고자료(參考資料)’, 각 부서나 위원회 및 각 성 당위원회 서기들이 보낸 보고서, 신화사에서 수집한 내부 보도(내참)를 검토했다. 비서들은 덩이 문서 위에 동그라미를 치거나 지적한 문건을 관련 간부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이끌었다.

 최근 국내에서 ‘정윤회 동향 문건’이란 청와대 보고서가 민낯을 드러냈지만 중국의 ‘내참’은 쉽게 유출되지 않는다. 서슬 퍼런 국가 비밀보호법의 영향도 크지만 체계적인 시스템 덕이기도 하다. 중국은 당·국가체제를 고수한다. 공산당이 곧 국가로 모든 국정을 영도한다는 의미다. 당 중앙위원회의 영도 아래 중앙선전부가 감독하는 중앙 및 지방 뉴스기구는 각각 내참부를 설치하고 내참을 간행한다. <그래픽 참조> 이는 선택이 아닌 의무사항이다. 신화사·인민일보·해방군보뿐 아니라 중앙당교·중앙판공청·중앙군사위판공청 등 당 기구도 내참을 펴낸다. 신화사는 ‘내참보도선진개인’이란 포상제도를 운영해 내참 기자를 독려하고 품질 향상을 꾀하고 있다.

 내참의 독자층은 소수다. 당·정·군 핵심 지도층이 기본 독자다. 대신 영향력은 막강하다. 중국의 정책 결정자는 신문 보도 대신 내참으로 여론을 파악한다. 일반 중국인에게 내참은 ‘비밀’과 동의어로 여겨진다. 내참부 기자 외에도 중국의 기자들은 필요시 내참 기사를 송고한다. 그 가운데 중난하이 직보가 가능한 신화사 기자는 하늘과 통하는 ‘통천(通天)’ 기자로 불린다. 그들은 일선 관리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다. 내참은 ‘공정·객관·정확’이 필수 요소다. 대신 사안의 해법 제시는 엄격히 금지된다. 판단은 지도자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베테랑 내참 기자는 “중국 기자의 기능과 역할은 서양 기자와 다르다”며 “우리는 공산당의 영도 아래 있다”고 말한다.

 내참은 직급에 따라 읽을 수 있는 종류가 다르다. 올 3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중앙당교가 발행하는 ‘사상이론 내참’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비롯한 정치국 위원 이상에게만 배포되는 핵심 매체라고 보도했다. 중국의 국가 기밀은 절밀(絶密·절대비밀), 기밀(機密), 비밀(秘密), 내부참고(部考) 등 4개 등급으로 구분된다. 절밀에 해당하는 ‘사상이론 내참’은 시진핑 주석과 통하는 ‘특급열차(直通車)’로 불린다. 해외 102개국과 국내 31개 성시에 분사를 두고 있는 초대형 통신사인 신화사는 독자층에 따라 내참을 분리 발행한다. ‘국내동태청양부엽(國內動態淸樣附頁)’은 최고 지도자용 내참이다.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치국 위원에게만 제공된다. 중대하고 긴급한 사태를 다룬다.

 다음은 ‘국내동태청양(國內動態淸樣)’과 국제 ‘참고청양(參考淸樣)’이다. 장관급 이상이 볼 수 있다. 중요한 동태, 민감한 문제, 핵심 건의사항을 게재한다. 주 2회 40~50쪽 분량으로 발행하는 ‘내부참고’는 국장급 간부에게 배포된다. 다루는 사안의 민감도는 전자에 비해 떨어진다. 기층 간부에게는 ‘내참선편(內參選編)’이 제공된다. ‘내부참고’와 ‘국내동태청양’ 가운데 덜 민감한 내용만 추린 편집본이다. 일주일에 한 번 간행된다.

 내참은 신화사의 주요 수입원이기도 하다. 신화사의 일부 지방 분사는 성급 내참을 발간해 연간 1000만 위안(약 17억7000만원) 정도의 순이익을 거둔다고 홍콩 봉황주간이 보도한 바 있다.

 내참은 폐해도 크다. 2003년 2월 신화사는 악성 호흡기 질환인 사스(SARS)가 광둥(廣東) 지역에서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이미 감염 환자 300명, 사망자 5명이 확인됐다는 첫 공식 보도였다. 하지만 내참에서는 2002년 11월 첫 환자 발생 이틀 만에 보고됐다. 조직적 은폐를 알게 된 세계보건기구(WHO)는 불투명한 중국의 언론 환경을 지탄했다. 저널리즘의 기본인 대중의 불만, 관리의 비리, 비관적 경제 전망, 비판적인 외신 보도는 중국에서 금기 사항이다. 중국의 매체는 당의 나팔수(喉舌·목구멍과 혀)로 불린다. 내참은 이를 보완하는 이목(耳目·눈과 귀)이다. 정통 저널리즘이 없는 중국에서 당의 통치 도구라는 의미다.

신경진 기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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