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혁신위 백서 갈등 사례] 보수·진보 갈려 번번이 마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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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은 전임 위원장이 주도하던 1기 교육혁신위원회는 번번이 교육부와 충돌을 빚었다. 혁신위 관계자들은 교육부에 대해 "개혁의지가 없다"고 불만을 털어놨고, 교육부 쪽에서는 "추상적 아이디어만 있을 뿐 교육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 반박했다.

혁신위가 최근 펴낸 '2년간 활동 백서'는 참여정부 안에서 진보와 보수 노선이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고, 그 결과 혼선이 빚어졌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 "교육이력철?"=2004년 8월 19일 청와대 집현실에서 열린 제53회 국정과제회의. 이날 혁신위는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2008학년도 대입제도개혁 방안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해찬 국무총리,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 등 장.차관 4명, 김우식 전 비서실장 등 청와대 관계자 6명, 정운찬 서울대 총장 등이 참석했다.

전성은 당시 교육혁신위원장은 노 대통령에게 2007년부터 교육이력철을 도입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한 학생에 대한 모든 기록을 모아놓은 교육이력철을 대학입시 전형 기본자료로 쓰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안 전 부총리는 "용어가 교육현장에 혼란을 줄 수 있는 만큼 준비 기간을 거쳐 2008년부터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석자 간 토론이 이어지면서 논란이 빚어지자 노 대통령은 "이력이라는 용어가 주는 오해가 있을 수 있다. 교육이력철은 명칭에서 교과나 성적 등이 빠지는 느낌이 든다"고 정리했다. 이 한마디로 결국 1년 이상 혁신위가 정력적으로 추진해온 '교육이력철'이 기존 학교생활기록부에 흡수됐다.

또 혁신위 내부에서도 위원들 간에 논란이 벌어졌다. 혁신위는 "대입제도 개선과 관련해 서울대.연세대 입학처장이 대학입학제도개혁특별위원회에 포함됐으나 이들이 반발했다"고 밝혔다. 특위 위원장이 자기 주장이 관철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퇴한 사실도 언급했다.

한 특위 위원은 "일부 이념지향적인 위원들이 말도 안 되는 방안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 "서울대 폐지?"=1기 혁신위의 일부 위원들은 회의과정에서 서울대 등 명문대를 가리켜 '비계 덩어리'로 부르는 등 반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혁신위는 2003년 서울대를 포함한 국립대에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동하며 학점을 채우면 학위를 주는 '공동학위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그러자 당시 언론들은 "혁신위가 서울대를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보도했다.

혁신위는 백서에서 "국립대 교수 공동 채용 방안, 국립대 학생 전학 확대' 등이 매스컴에 의해 서울대 폐지론으로 오도됐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혁신위 소속 고등교육분과가 2004년 11월 제2차 토론회를 열었는데 이때 유팔무 교수(한림대)는 '서울대 폐지론'을 주제 발표한 것으로 백서는 적고 있다. 혁신위는 이날 토론회에서 서울대 폐지의 의미와 공교육 정상화, 대학의 공교육화에 대한 문제를 논의했다.

당시 안병영 부총리는 혁신위의 서울대 폐지론이 고개를 들 때마다 "서울대 폐지나 국립대 공동학위제는 시행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 "교육부 해체?"=혁신위는 2003년 12월 노 대통령에게 '참여정부 교육혁신 로드맵'을 보고했는데 여기엔 교육 분권.자치와 교육행정권한의 대폭 이양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교육부의 교원정책, 학교 설립과 재정지원 정책, 교육과정 편성.운영 권한을 지역단위에 넘기고 교육부는 단지 국가 단위의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감사.감독.국제교류사업만 하라는 것이다.

이날 국정회의에서 전성은 전 위원장은 "모든 교육정책은 교육부의 슬림화를 비롯한 교육행정개혁이 우선하지 않으면 설득력이 없다"고 발언했다. 혁신위는 백서에서 이 때문에 오히려 교육부로부터 조직적인 반발을 사게 됐다고 주장했다. 혁신위를 무력화하거나 혁신정책을 해체시키려는 시도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혁신위는 백서에서 "주요한 권한 이양을 내용으로 한 정책제안서를 제출하려다 교육부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제안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며 "지방자치제도 혁신을 포함한 제도 개혁안을 놓고 일곱 차례에 걸쳐 혁신위와 간담회를 벌여 의견을 조율했다"고 말했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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