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 4명 14일만에 구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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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고향에 묘자리까지 봐두고 제 수의도 마련해 놨더군요. 황천입구까지 갔다온 셈이죠.』 9월3일, 지하 2백50m의 갱속에 갇혀있다가 극적으로 구출됐던 광부 4명의 인간승리는 지난 13일로 생환 1백일을 맞았다.
강원도태백시황지2동 태백탄광의 전재운(47)·배대창(47)·손신광(39)·김기전(23) 씨등 4명은 『다시 태어나 두번째 삶을 사는 기분』이라며 『남은 생을 정말 소중하고 값지게 보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전씨들은 생환1백일을 기념해 이날 시내음식점에 모여 조촐한 기념파티를 갖고 의형제를 맺었다. 『우리가 살수 있었던것은 서로를 위로해 준 동료애 덕이었죠. 앞으로도 그때의 동료애를 살려 친형체처림 지내기로 했읍니다.』 나이를 따져 전씨가 맏혐이 됐다.
이들이 굴속에 갇혀있던 시간은 총14일9시간43분. 3백46시간동안 소나무 갱목껍질과 물로만 연명했다.
구출후 4명은 모두 손·발서부터 얼굴까지 온몸이 한꺼풀씩 벗겨졌다. 지옥같던 굴속생활의 허물을 벗은 셈이다.
배씨는 한달여만인 10월10일. 전씨등 3명은 두달반만인 11월19일 각각 퇴원했다.
현재는 하루 한번씩 병원에 들러 물리치료를 받고 약을 타다 먹는다.
얼굴색이 좋아졌고 본래의 몸무게도 회복했다.
병원측도 『거의 완쾌상태』라는 진단이다.
그러나 후유증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허리가 자주 결리고 시력이 몹시 떨어졌다. 조금만 달려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밤엔 잠이 잘 오지않는다. 기억력도 몹시 쇠퇴해 적어놓지 않으면 약속도 잊곤 한다. 꼴똘히 생각하려면 머리가 깨지는것처럼 아파진다.
특히 맏형 전씨는 귀까지 멍멍하고 소변보기에도 불편하다고 했다.
이때문에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채 당시 각계에서 보내준 위로금 각1백여만원씩과 노동부로부터 노임의 60%에 해당하는 공상비 월16만∼20만원씩을 받아 생활하고있다.
자녀 3명이 모두 학교에 다니는 배씨는 『공상비를 계속받기도 미안하고 그돈으론 생활도 안돼 빨리 재취업해야겠는데 몸이 말을 듣지않아 큰일』이라고 했다.
속모르는 자식들은 툭하면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 누워있는 아빠에게 무용담(?)을 들려달라며 졸라댄다. 아빠덕분에 친구들 사이에서 영웅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고를 낸 인백탄광도 그동안 사후조치를 하느라고 곤욕을 치렀다.
탄광속은 한달여에 걸쳐 물을 빼내고 갱도를 새로 보수했다. 또 다른 사고에 대비해 갱도 곳곳에 양수기9대를 설치했다. 사고가 나면 다른 갱도로 빠져나올수 있는 대피소와 대피통로도 만들었다.
사장 김두하씨(40)는『그동안 보수비와 채탄작업을 하지못해 2억여원의 손해를 봤다』며 다시는 사고가 없을것이라고 장담했다.
동자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8월말 현재 전국에서 발생한 광산사고는 모두 1백8건, 1백29명이 숨지고 2천8백86명이 다친것으로 나타났다. 월평균 16명이 숨진셈이다.
보안시설완비, 작업조건개선, 광부들의 복지후생문제는 전체광산의 문제점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끝) <허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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