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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I Report] 유가 급등,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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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 한기주 산업연구원 환경에너지연구팀장

▶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영향으로 국제유가가 다시 급등세를 보인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품거래소 거래원들이 원유선물 거래 주문을 내고 있다. [뉴욕 AP=연합뉴스]

유가가 과연 70달러를 넘어서서 우리 경제에 국제통화기금(IMF) 파동 때와 같은 엄청난 충격을 주게 될 것인가? 국제유가가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함에 따라 그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국제유가는 지난달 30일 현재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58.37달러를 기록하여 60달러 수준에 거의 육박했다. 두바이 유가가 2003년에 평균 26.80달러, 2004년에 33.64달러였던 것과 비교해 보면 금년 들어 국제유가가 어느 정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며칠 사이에 원유가가 더욱 급등하고 있는 것은 물론 미국을 강타하고 있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영향이 크다. 카트리나로 인한 멕시코만 일대 석유시설 피해가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렇지 않아도 공급 부족 상태에 놓여 있는 세계 석유시장이 더욱 심각한 수급 불균형 상태에 놓일 것이라는 우려가 급속히 확산됐기 때문이다. 미국의 석유 생산량은 세계 3위로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의 9.7%(2003 기준)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멕시코만 일대의 석유시설이 심각한 피해를 봤으니 세계 석유 수급의 차질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석유시설 피해 복구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경우 유가는 70달러 수준이 당분간 지속되는 것은 물론 80달러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석유시설이 완전 복구되는 경우 유가가 다시 안정되거나 또는 하락세로 돌아설 것인가? 금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유가가 금년 하반기부터는 하락세로 반전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현재의 고유가 수준이 지속되거나 또는 더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이 보다 설득력을 얻어 가고 있다. 최근의 고유가 추세는 세계 석유시장의 구조적 불균형에 기인한 것이고 이러한 불균형이 단기적으로 해소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세계 석유 공급 측면을 보면, 지난 20여 년간 지속되어 온 저유가 추세로 인해 세계 석유 생산 및 정제 능력은 소폭 증가한 데 비해 수요의 증가폭은 이를 훨씬 상회함으로써 잉여 공급 능력이 현재 거의 바닥이 난 상태다. 반면 세계에서 둘째로 석유를 많이 소비하는 중국 경제가 금년 하반기부터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라는 당초 예측과는 달리 빠른 성장세를 지속함으로써 석유 소비 또한 급증세가 계속되고 있다. 더욱이 이라크 등 중동지역의 정세불안이 예상과 달리 완화되기는커녕 더욱 불안해지고 있어 중동의 석유 생산이 확대될 것이라는 그동안의 예상이 적어도 수년간은 현실화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으로 바뀌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 석유 전문기관 중 일부는 국제유가가 2006년 중에 두바이유 기준으로 연평균 60~70달러 수준에 이를 가능성도 제시하고 있다.

유가가 이런 수준에 이를 경우 우리 경제는 어떠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인가?

산업연구원(KIET)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유가가 60달러일 경우 국내총생산(GDP) 감소 효과는 0.55%포인트 정도로 나타났다. 또한 유가가 배럴당 47달러(기준 시나리오)와 53달러(악화 시나리오)인 경우 향후 1년간 무역수지 악화 효과가 각각 53.4억 달러 및 76.4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한편, 에너지경제연구원(KEEI)은 두바이 배럴당 유가가 2005년에 평균 50.55달러(기준안, 전년비 50% 상승) 및 53달러(고유가 시나리오, 전년비 60% 상승)인 경우, 무역수지는 각각 28.5억 달러 및 33억 달러 감소하고 경제성장률은 0.83%포인트와 0.96%포인트 하락하며, 소비자물가는 0.5%포인트 및 0.58%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전망을 종합해보면 유가(두바이유 기준)가 배럴당 연평균 60~70달러에 이를 경우 GDP는 적게는 1%포인트에서 많게는 2%포인트가량 하락하게 될 것이다. 지금과 같이 성장률이 5%를 밑도는 상황에서 유가상승에 의한 이러한 성장둔화는 우리 경제에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가 견딜 수 있는 유가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그 답은 유가의 상승폭보다 고유가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유가가 배럴당 연평균 60~70달러에 이를 경우 우리 경제는 상당한 타격을 받기는 하지만 외환보유고가 2000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고 전자산업.수송기계산업 등 주요 산업들에 대한 고유가 영향이 당분간은 그렇게 크게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유가가 그 이하 수준을 밑돌더라도 장기간 지속돼 세계 경제가 침체국면에 접어든다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큰 충격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고유가가 장기화될 경우 그 영향이 심각한 만큼 고유가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민간부문에 대해서는 위기 의식을 높여 자발적으로 에너지 소비를 절약하도록 유도하고, 산업부문에 대해서는 에너지 절약형 제품구조 및 산업으로 이행을 장려하고 기업과의 자발적 협약 등을 통해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산업이 에너지 다소비 구조로 되어 있는 만큼 단기간에 에너지를 덜 쓰는 산업으로 이행토록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우리나라 산업의 총에너지 소비 가운데 68%가량을 차지하는 철강.석유화학 등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경우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고유가 극복의 길은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 고유가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한기주 산업연구원 환경에너지연구팀장

화학·석유·섬유산업 부가가치 확 줄 듯

고유가의 파급효과는 업종.기업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산업연구원이 최근 '에너지-산업 연관 분석모형'을 이용해 살펴본 바에 따르면 수입유가가 배럴당 60달러와 80달러일 경우 전체 산업의 부가가치 감소효과는 0.55% 및 0.97% 정도로 추정됐다. 산업 부문별로는 농림수산업과 건설업 및 서비스업의 경우 영향이 그렇게 크지 않게 나타났다. 이에 비해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제조업의 경우는 유가상승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제조업 중에서도 특히 화학, 비금속광물, 석유 및 석탄 산업 등은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유화학산업은 생산비에서 차지하는 에너지 비중이 대단히 높은 만큼 고유가로 인해 커다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업체별로는 내수기업 및 하청부문 기업들의 경우 생산비 상승을 가격으로 전가하기가 어려워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이나, 수출주력 기업 및 나프타분해 공정 등 일관 체제를 구축한 기업들은 제품가격으로의 생산비 전가가 가능해 상대적으로 영향이 적을 것이다.

섬유산업의 경우에도 고유가의 영향을 비교적 크게 받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화학섬유사와 직물의 경우 석유화학제품을 원료로 생산되기 때문이다. 섬유산업의 경우에는 특히 장기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여건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세계 시장에서의 경쟁이 매우 치열해 유가상승에 따른 생산비 인상을 가격으로 전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전기 및 전자, 수송 장비 산업 등은 생산비에서 차지하는 에너지 비용이 크지 않기 때문에 고유가의 영향을 단기적으로는 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산업은 세계 경기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고유가가 지속되어 세계 경제가 나빠질 경우 장기적으로는 수출에 큰 타격을 받게 되어 생산도 크게 줄어들게 된다.

철강산업의 경우도 주요 에너지가 석탄이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고유가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지만 국내외 경기가 부진할 경우 수요둔화를 면치 못하게 된다.철강이 건설에서부터 자동차.조선.기계.조립금속 등 전산업에 걸쳐 다양하게 소비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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