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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기자의 뒤적뒤적] 싸움질이 때론 신나고 수지도 맞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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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모든 것은 돌멩이와 몽둥이로부터 시작되었다
리차드 아머 지음.이윤기 옮김.시공사

참 어지러운 세상입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진작 알았지만 권위가 사라지고 '진실'이라 믿었던 것이 곧잘 뒤집히니 옳고 그름마저 판정하기 조심스러울 지경입니다. 그러니 갖가지 수사(修辭)와 승리자의 자랑으로 점철된 '정사(正史)'가 아니라 그 이면을 파헤친 역사를 읽는 것도 나름대로 의의가 있습니다.

이 책은 '코믹 역사'시리즈 중 둘째 권입니다. 원시 시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주로 서양을 중심으로 한 전쟁사를 다뤘지만 날카로운 풍자가 돋보이는 책입니다. 윤구병 전 충북대 철학과 교수는 '위선적이고 가증스러운, 학문을 빙자한 사기놀음에 똥침을 놓은 책'이라며 만세를 불렀더군요.

1870년 프러시아와의 보불전쟁에서 열세에 몰리던 프랑스는 미트레이외즈 기관총이란 신무기를 투입합니다. 자그마치 서른 개나 되는 총열을 하나로 결합해 동시에, 그리고 연속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경이적 무기였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프랑스 군이 워낙 극비에 부쳤던 바람에 신무기를 받아든 프랑스 사수들조차 사용법을 몰랐던 탓이랍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프러시아는 배상금으로 프랑스에서 10억 달러를 받아내 '6개월간의 투자'로 짭짤한 잇속을 챙깁니다. 프랑스 역시 배상금을 갚기 위해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해 3년 만에 청산했으니 나쁘지만은 않았다나요. 싸움질은 골치 아픈 문제에서 한동안 떠나게 해주는 신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때로는 수지도 맞춰주는 모양이라는 것이 지은이의 신랄한 지적입니다.

또 천연덕스레 "말(馬)이야말로 최초의 양심적 참전 거부자들이란 말이 있다"고 말합니다. 전사를 태우고 전장에 뛰어들어야 했던 말들은 자칫하면 창이나 화살의 과녁이 되는 것이 겁나 길길이 날뛰고는 했던 것을 빗댄 것이죠.

이 책이 온통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이제 전쟁은 그냥 전쟁이라고 불리는 대신 경찰활동, 평화 유지, 공권력에 대한 저항, 저항에 대한 진압이라고 불린다…흥미로운 것은 냉전, 열전, 정의로운 전쟁, 깨끗한 전쟁, 제한전처럼 전쟁 앞에 형용사가 붙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란 통찰은 귀기울일 만합니다. 지은이가 요즘의 '테러와의 전쟁'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긴 하지만.

이 시리즈의 첫 권 '모든 것은 이브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인류사에서 두드러진 여성들을 다뤘습니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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