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전무부인 교장부인 피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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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40대 가정주부가 6개월 간격으로 대낮에 피살됐다.
서울정능4동266 파일러트 만년필제조업체 신화사 전무부인 장한영씨(44)피살사건(3월19일)과 서울수유5동519 돈암국교 교장부인 최옥주씨(48) 피살사건(9월6일)-.
졸지에 아내를 잃고, 자상하던 엄마를 여윈 두 가정은 웃음을 잃은지 오래다.
『대문을 들어설때면 책가방을 받아주시던 엄마모습이 어른거려 미칠것만 같아요.』 싸늘한 시체로 변한 어머니 장씨를 맨처음 발견했던 장남(13·K중1년)은 『어른들이 두렵고 보기 싫어졌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아버지 이훈용씨(48)는 사건이 난뒤 2개월만에 다니던 신화사를 그만뒀다. 회사에서는 만류했지만 집안일로 회사이름이 세상에 오르내리는게 미안해서였다.
얼마전 조그마한 개인회사를 차렸지만 그역시 일이 손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고했다. 아내의 손길이 닿았던 가구나 주방집기등 집안 구석구석이 썰렁하게만 보여 퇴근후엔 독주도 마셔보았지만 허전한 마음은 메울길이 없다고 했다.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남매(중3·중l)를 위해 저희어머니의 대형사진을 거실에 걸어놓았었죠. 녀석들이 아침 저녁 사진을 들여다보며 눈물을 짓는게 가슴 아파 제손으로 떼어냈읍니다.』
이씨는 기분전환이라도 하려고 집을 옮길 생각에 복덕방에 내놓았지만 용케도 『사람 죽은 집』이란 소문이나 원매자도 없다고 했다.
4월부터 집안일을 돌보고있는 정씨(51·여)는 『어린것들이 늘 기운없이 방안에만 틀어박혀 생기를 잃고 있는것이 큰걱정』이라고 했다.
이씨가족의 비극이 세인의 기억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다시 교장부인 최씨가 피살됐다. 부산에서 상경, 모처럼 놀러갔던 전가정부 윤모양(23)이 괜스레 봉변을 당했다.
돈암국교 교장 강택중씨집은 출가한 장녀(26)가 가끔 들르고 S대 1년생인 2녀(19)가 고1(16)과 중2(14)년생인 두 남동생을 돌보고 있다.
나이든 손위의 형제들이 있어 남매 단둘뿐인 이씨집보다는 다소 밝은 분위기다. 『교육자로 평생을 보낸 아버님의 자세에 영향을 미칠까봐 우리 형제들끼리 모여 눈물을 보이지말자고 약속했지요.』
강교장의 둘째딸은 어머니장례를 치른뒤 이렇게 약속들을 했지만 각자 방에 들아가서는 어머니 생각에 소리죽여 울었다고 했다.
교직원들은 『가뜩이나 과묵한 교장선생님이 그사건이후 더욱 말수가 적어져 옆에서 보기에 딱하다』며 『그래도 선생님의 자세는 전혀 흐트러짐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단란했던 가정에 슬픔을 몰고온 이 두사건은 해를 넘길것같다.
경찰은 그동안 별의별 수단을 동원, 수사와 추리를 거듭했으나 사건당시 단정했던 「원한」에서 범인검거가 쉽지않다는 「뜨내기 단순강도」로 방향을 바꿨을뿐 한발짝도 나가지 못한채 장기 수사체제에 들어갔다.
대개의 강력사건 수사가 그렇듯 이 두사건 역시 피해자주변인물 수사과정에서 엉뚱한 피해자가 나오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장씨의 이웃 P씨(25)와 C양(24).
숨진 장씨는 목에 붕대가 감기고 입언저리에 의료용 대형반창고가 붙여져있었다. 이러한 이유만으로 치과기공이던 P씨와 간호보조원이던 C양이 사건발생 11일 뒤인 지난 3월30일 각각 경찰에 연행됐다.
이들은 경찰에서 사건발생시간을 전후해 서울보문동S다방에서 차를 함께 마셨다는 알리바이가 성립돼 P씨는 연행 33시간만에 일단 풀려났다.
그러나 C양은 5천원짜리 절도법으로 구속됐다. P씨집에서 발견된 낡은 핀세트·치경·치본등 싯가 5천원어치를 C양이 전에 근무했던 S치과의원등에서 훔쳤다는 것이었다. C양은 4월27일 검찰에서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수사도중 심하게 얻어맞았읍니다. 탈진한 몸에 찬물세례를 받기도 했지요. 수갑을 채운채 K시장등에 끌려다닐때는 죽고만 싶었읍니다.』
5년만에 옛날 살던 집을 찾았다. 오른쪽 팔에 상처를 입었던 가정주부 윤양은 입원기간중 계속 심문을 받았고 윤양이 몇년전에 사귀던 애인들마저 차례로 수사선상에 올라 곤욕을 치렀다.
윤양의 첫 애인은 사건당시 중동근로자로 취업중이어서 수사대상에서 제외됐으나 두번째 애인이나 최근에 사귀던 애인은 사건당일 부산직장에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증명되기까지 경찰의 집요한 추궁을 당했다.
사생활의 비밀이 모두 벗기운 채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은 윤양은 부산으로 내려갔다.
또 최근에는 J모목사(40)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매스컴에 등장하는등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경찰의 한 간부는 『요즘은 범인들이 으례 복면·장갑등을 사용, 손을 씻는등 지문을 남기지않고 달아나 시간이 흐를수록 각종 물증이 없어져 법인을 잡더라도 증거부족으로 공소유지가 힘들것 같다』고 씁쓰레했다. <전채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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