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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유가·그리스·중국 … 증시의 '쓰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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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국 증시에게 15일은 조마조마한 하루였다. 오전 9시 코스피지수는 18포인트 하락하며 개장했다. 불과 1분 만에 하락폭은 22포인트로 커졌고, 1900선이 깨졌다. 이 지수가 장중 1900선 아래로 내려간 것은 10월 17일 이후 2개월만이다. 그 후 차츰 충격에서 벗어나며 전날보다 0.07%(1.35포인트) 하락한 1920.36으로 마감했다. 그러나 시장은 하루종일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위태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주 세계 금융시장이 급락한 데 따른 불안감이 국내 증시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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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피는 지난주 유가하락, 그리스 정치불안, 중국 증시 하락 등의 여파로 3.3%나 하락했다. 같은 이유로 지난주 세계 57개국의 평균 주가도 3.77% 떨어졌다. 특히 20% 가량 급락한 그리스를 비롯해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유럽 증시와 러시아,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등 남미·산유국 증시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세계 금융시장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미국·독일·영국 증시도 여지없이 무너졌다.

 글로벌 악재에 한국을 비롯한 세계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여러 악재로 투자심리가 얼어붙기 시작하면서 불안감이 공포로 바뀔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조그만 악재에도 심하게 휘청이곤 한다.

 이런 불안을 촉발한 건 역설적이게도 유가 하락이다. 그동안 유가가 떨어지면 원유 수요가 늘면서 세계 경제가 조금씩 활력을 찾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2일 “유가 하락은 미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에 전반적으로 호재”라며 “내년 미국 경제성장률은 저(低)유가에 힘입어 3.5% 성장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는 앞선 IMF의 전망치(3.1%)보다 0.4%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하지만 12일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내년 하루 평균 석유 수요량을 올해보다 90만배럴 늘어나는데 그친 9330만배럴로 전망하면서 불안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는 지난달 전망치보다 23만배럴이나 하향된 수치다. 그 후 금융시장은 유가 하락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수요 부진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수요 부진의 여파로 유가 하락이 이어지고 결국 세계 경제는 다시 둔화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힘을 얻었다. 장밋빛 전망이 잿빛으로 바뀐 셈이다.

 서동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하락의 부정적이 효과가 긍정적인 효과보다 앞에 설 가능성이 크다”며 “돈을 풀면 물가가 오르기 마련인데 주요국의 유동성 공급에도 유가가 하락한다는 점은 향후 유럽과 일본이 양적 완화정책을 내놓아도 경기회복을 견인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세계 경제에서 설비 투자 부진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관련 회사가 설비투자에 가장 적극적이었다”며 “유가가 하락하면 에너지 관련 사업에 대한 투자가 감소 또는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유가 하락에 이어 금융 불안에 불을 지른 건 그리스 정국 불안이었다. 17일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있는 그리스에서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집권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어갔다. 시리자가 지지율 1위를 확보하면서 현 집권당이 수세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헌법에 따르면 1차 투표에서 300명으로 구성된 의원 3분의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1차 투표에서 부결되면 23일 2차 투표, 29일 3차 최종 투표가 열릴 예정이다. 이아람 농협증권 선임연구원은 “그리스 정치 리스크는 선거 결과가 나오는 12월 말까지 주식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며 지속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멈출 줄 모르던 중국 증시까지 급정거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에 불안감을 더했다. 중국 상해종합지수는 한 때 3000포인트까지 돌파했지만 지난 9일 중국 정부가 담보물로 사용될 수 있는 회사채 범위를 좁히는 조치를 취하자 5% 이상 급락해 2800선까지 떨어졌다. 이는 ‘투자 과열’을 막고 지방 정부의 부채를 엄격히 규제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중국 증시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는 건 악재”라면서도 “중국발 악재는 단발성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해석은 분분하다. 먼저 세계 증시의 불안이 이런 3대 변수가 아닌 투자자의 불안 심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주요국 증시에서 주가가 오르는 속도가 기업 이익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빨라 투자자가 불안해하던 차에 유가 하락 등 악재가 터져나왔다는 얘기다.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셈이다. 삼성증권 박정우 연구원은 “펀더멘털(기초체력)이 나아지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가가 오르다 보니 투자자가 유가 급락에 흔들리고 그리스 정치 불안에도 영향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펀더멘털보다 센티멘털(투자심리)이 문제라는 주장이다.

 유가하락과 경기회복 간의 시차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우리투자증권 김병연 연구원은 “유가가 떨어지면 바로 다음 분기에는 경제성장률이 오히려 낮아지지만 두 번째 분기부터는 성장률이 상승하는 효과가 나오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원유를 수입·가공해서 제품이 나오는 데까지 시차가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투자증권은 최근 유가 하락으로 가계 입장에선 연 2조1000억원의 소비여력이 더 생길 것으로 추산했다.

 어느 쪽이든 기대했던 산타랠리는 물건너 갔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서동필 연구원은 “유가 급락으로 주요국의 중앙은행이 원했던 목적(경기 부양)을 달성하기 어려워지고 금융시장 불안감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말, 연초 주식시장에 대한 기대감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창규·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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