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쟁에 대한 해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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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당쟁」문제는「사대주의」문제와 함께 당시 조선시대사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주요 성토 대상.
조선은 당쟁으로 망했다는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안확은 정치학도로서의 식견을 십분 발휘, 『근대정치는 당파로 인해 발달을 이루고 오히려 당파가 진보치 못하고 두절함으로써 정치가 쇠하였다고 단언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독재정치란 장시간에 걸치기 어려운데 우리 근세정치에서 5백년을 끈것은 바로 정당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지방사회에서 촌회·향회·유회등을 중심으로 자치적 운영방식을 발달시키고 있었던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중앙의 당파정치는 오히려 이의 반영으로 보았다.
안확은 결국 망국으로 이끈 민족사의 책임은 조선왕조사 전체에 있는것이 아니라 그말엽에 당론이 절멸하면서 대두한 세도정치에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최원식교수는 오늘날 안확의 이름이 적막하게 된 원인은 무엇보다도 그의 사상적 한계에 있다고 지적, 그의 민족주의가 민중과 튼튼한 연대를 맺지 못함으로써 1920년대 중반 이후 민족해방운동의 주류에서 벗어났다고 발표한바 있어, 앞으로의 연구가 더욱 주목을 끌게 한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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