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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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뉴델리 아시안 게임에서 새로 확인한 것이 있다. 한국 테니스다. 별로 큰 기대도하지 않았던 종목에서 금메달이 쏟아졌다.
테니스는 원래 딱딱한 공을 사용하는 운동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말랑말랑 한 공을 쓰는 연식정구를 한때 테니스의 심벌로 생각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테니스는 그런 구분만 있는 건 아니다. 구미에선 론 테니스와 코트 테니스의'구분이 더 엄격하다.
코트 테니스는 흔히 리얼 테니스로도 불리고 영국에서 그저 테니스라고 만도 부른다. 그 기원은 그리스와 로마시대로 소급되지만 영국과 프랑스의 왕들이 즐겼다고 해서「로열 테니스」 라고 도 한다.
하지만 그건 일반화한 게임이 아니다. 흔히는 론 테니스다. 우리가 요즘「테니스」라고 부르는 것이다.
BC5세기께 이집트나 페르시아에서 이와 유사한 게임이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현재의 테니스는 영국에서 기원했다.
1874년, 영국인「월터·잉필드」가 고안해 낸 것이다. 최초의 테니스 챔피언 결점전도 영국에서 있었다. 1877년 6월 윔볼던 에서.
유명한 윔볼던 테니스의 개휴 이다. 첫 우승자는「스펜서·고어」우리나라에 테니스가 들어온 것은 1900년. 도지부의 관리들이 친목을 위해 회동구락부를 만든 것은 1908년이다. 그러나 그때 한 것은 연식임구 였고 론 테니스는 2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첫 대회는 1927년에 열렸었다. 하지만 정식공 은 구하기가 어려워 보급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 테니스가 비로소 침체를 벗고 레저 스포츠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60년대에 들어서다.
7O년대부터 테니스 용구도 국내 생산이 가능해서 윤출 과 내수의 폭발적 증가로 공급이 달릴 정도의호황을 맞고 있다.
래킷, 볼, 신발 등 모두 국제 공인을 받아 경기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코트도 휠씬 많아 졌다. 론 테니스는 클레이(맨땅), 그래스(풀밭), 콘크리트, 아스팔트, 우드(나무판), 그리고 콤퍼지션 구장을 모두 사용하는 운동이다.
하지만 우리는 클레이 코트가 거의 전부다. 잔디 코트와 케미컬(인조 잔디)코트는 한둘뿐이다.
클레이 코트에만 익숙해 있는 우리 선수들이 아시안 게임의 잔디에서 좋은 성적을 낸 것은 장한 일 이다.
우리 선수들의 연습량이 많았던 것도, 전지훈련을 보내는 등 투자가 많았던 것도 주효했다.
승리의 원인 중엔 일본과 인도 등의 우수선수들이 프로라서 빠진 덕분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우리경제력의 뒷받침이다. 테니스 천구와 시설이 향상, 보급되면서 국민의 주요 레저 스포츠가 될 수 있었던 데서 한국 테니스의 영광도 따라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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