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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The New York Times

일본 우익의 아사히신문을 향한 광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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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마틴 패클러
뉴욕타임스 도쿄 특파원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隆)는 33세였을 때 기사 하나로 유명해졌다. 일본에서 발행부수 2위인 아사히(朝日)신문의 탐사기자로 일하던 그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취재했다. 끌려갔던 한국 여성의 증언을 처음으로 보도한 기사 중 하나였다.

 23년이 지난 지금, 아사히신문에서 퇴직한 56세의 우에무라는 일본 우익의 표적이 됐다. 타블로이드신문들은 우에무라가 ‘한국의 거짓말’을 널리 퍼뜨린 배신자라고 비난했다. 협박 때문에 한 대학 교단에서 물러났다. 광신적인 국수주의자들은 우에무라의 10대 딸을 자살하게 만들자고 선동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등 아이들까지 노리고 있다.

 아사히는 오래전부터 극우파가 ‘즐겨’ 증오하는 언론이다. 최근 공격은 전후 어떤 공격보다 거세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극우 정치인들이 맹공을 퍼부으며 일본에서 마지막 남은 진보 수호세력 중 하나인 아사히의 기를 꺾고 있다. 역사 수정주의 세력까지 기세등등해져 1993년 일본 정부의 위안부 강제동원 사과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협박은 이들이 역사를 부인하는 방식”이라고 삿포로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우에무라가 말했다. ‘아사히 전쟁’이라 불리는 이 공격은, 아사히신문이 1980~90년대 초반 발행한 기사 중 10여 개를 철회한 8월 시작됐다. 한국 여성을 군 위안부로 납치하는 데 가담했다는 전직 군인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의 증언을 인용한 기사들이었다. 우익세력은 아사히의 기사 취소를 계기로 135년 역사의 아사히신문 폐간까지 요구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10월 국회 연설에서 “아사히신문의 잘못된 보도로 많은 사람이 상처와 슬픔·고통·분노를 겪었다. 일본의 이미지도 손상됐다”고 말했다. 분석가들은 이번 달 선거를 앞둔 우익세력이 대표적 중도좌파 신문인 아사히의 양손을 묶으려 한다고 평가한다. 아사히는 오래전부터 일본이 군국주의 과거에 대해 더 많이 속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러 사안에서 아베와 반대되는 입장을 펼쳤다. 진보 야당이 2년 전 선거에서 처참히 패배한 뒤 아직 세력을 규합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사히는 점차 고립되고 있다.

 아베와 동맹세력은 아사히의 곤경을 기회 삼아 일본군이 한국 등 여러 국가에서 여성 수만 명을 강제동원했다는, 국제사회가 공인한 역사를 바꾸기 위해 혈안이다.

 대부분의 주류 역사학자는 일본군이 점령지 여성을 전리품 취급하며 강제로 중국부터 남태평양 지역까지 일본군 위안소로 끌고 갔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많은 여성이 공장이나 병원에서 일하게 해 주겠다는 거짓말에 속았고 위안소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일본군 병사들에게 성을 착취당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일본군이 여성들을 납치해 위안소에서 일하게 했다는 증거도 있다.

 강제로 성노예가 됐음을 증언한 여성 중에는 중국인·한국인·필리핀인뿐 아니라 당시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서 납치된 네덜란드인도 있다. 그러나 역사 수정주의자들은 납치 증거 부족을 트집 잡아 여성들이 강제로 성노예가 됐다는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위안부들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군부대를 따라다닌 성매매 여성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요시다가 거짓 증언을 했다는 아사히신문의 결론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요시다 증언의 진위가 확인되지 않았음을 아사히가 97년 이미 인정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기사 철회를 공식 발표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이에 대한 아사히 직원들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아베 정부가 해당 기사를 이용해 아사히 기자의 신뢰도를 깎아내렸기 때문에 기록을 바로잡아 정부의 공세를 약화시키기 위해 늦게나마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철회 발표는 오히려 더 많은 비난을 부추기게 됐고, 역사 수정주의 세력이 자신을 알릴 기회를 열어 줬다. 이들은 전 세계가 위안부 강제동원을 믿게 된 게 순전히 아사히신문 때문이라며 외국 역사학자 입장에서 머리를 긁적일 정도로 믿기 힘든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처참한 경험을 증언하기 위해 수십 명의 여성이 나섰지만 우익세력은 오로지 아사히신문의 보도 때문에 일본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듣게 됐다고 주장한다. 2007년 미 하원에서 일본이 “20세기 가장 대대적인 인신매매 중 하나”를 저지른 것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된 것도 아사히신문 때문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우익세력은 아사히를 굴복시켜 ‘그동안 너무 부정적으로 그려진 일본 제국주의의 초상’을 지우고, 종국에는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93년의 공식사과문까지 뒤집겠다는 오랜 목적을 이루려 한다. 다수 우익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의 다른 참전국도 범죄를 저질렀으며 일본이 특별히 악랄했던 건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에무라가 지역 문화와 역사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호쿠세이가쿠엔(北星學園)대학은 극우세력의 폭탄테러 위협을 받고 있다.

마틴 패클러 뉴욕타임스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