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씨의 소설「포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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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 달의 소설 중에는 한승원씨의『포구』(한국문학), 양귀자씨의『들풀』(현대문학), 박양호씨의『바벨 호』(문학사상)등 이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한승원씨의『포구』는 극복의지로서의 한을 그렸다. 6·25때 서로의 아버지가 죽음을 당한 두 남자가 안개 자욱한 포구에서 한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 중의 한사람은 그 한을 원한으로 지니고 복수를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복수행위 때문에 마음의 고통을 받게 되고 끝내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주인공은 그 한을 비극적 상황을 극복하는 의지로 삼는다.
복수의 유혹을 받으면서도 그는 복수로써는 한을 풀 수 없다는 것을 느끼며 방황한다. 이 소설에는 하나의 설화가 작품전체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아이들이 뱀을 돌로 쳐죽이고 있었다. 뱀은 돌을 맞아 거의 죽어 가고 있는데 꼬리부분이 아직 살아 있었다. 그때 그 옆을 지나던 한 어른이 말한다.『그 뱀을 잘 죽여야 한다. 어디 한군데라도 살아남으면 밤이슬을 맞고 지네가 된단다. 수백 마리가 되어 가지고 밤에 잠자는 너희들을 물어뜯어 죽일 것이다.』
자연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러한 설화가 나온 것은 인간사에서 이러한 일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생각한다. 인간세계의 끊임없는 복수의 연속이 모두를 파멸시키는 것이며 한은 그러므로 원안이 되지 않고 비극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되어야 한다고 한씨는 생각한다.
양귀자씨의『들풀』은 60년대 김승옥씨의『무진기행』, 70년대의 황석영씨의『삼포 가는 길』을 연상하게 한다. 각각 60년대와 70년대의 정신적 고통을「떠남」과「허망」으로 표현했던 이들 작품들과 같이 양씨의『들풀』은 80년대의 또 하나의 떠남이다. 제적된 대학생과 여공으로 일하다가 호스테스가 된 여인이 삶을 이어나갈 조그만 정신의 끈을 찾아내려는 몸부림을 보이고 있다.
박양호씨의『바벨 호』는 우화적으로 처리되었다. 큰 저수지 안에 있는 「중학생 몸만한 잉어」는 가뭄으로 물이 빠지고 모든 사람이 잡으려 할 때 얕은 물을 필사적으로 거슬러 올라 갓 부부가 된 마음씨 착한 사내와 작부출신 여자 앞에 나타나 몸을 의지한다. 착하고 고난받는 사람 앞에 나타난「거대한 잉어」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가.
김윤식·권영민<도움말 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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