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 기자의 문학 터치] '외출' 김형경 지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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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형경(44)씨의 장편 '외출'(문학과지성사)을 놓고 문단이 거듭 시끄럽다. 발단은 사흘 전 '영화 대본 뼈대로, 소설 쓰는 시대'란 본지 기사였다. 기사는 영화 시나리오가 원작인 소설을 본격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지금 문단은 이 물음 앞에서 의견이 팽팽히 갈린다.

여기서 일단 확실히 해둘 게 있다. 이전 기사에서 '거액의 원작료를 지불하고'라고 썼다. 그러나 문지는 원작자인 허진호 감독에게 원작료를 지불하지 않았다. 다만 해외 수익의 일정 비율이 허 감독에게 지급된다. 소설 초판은 한국에서 1만부, 일본에서 10만부 인쇄된다.

소설에 대해 불만은 없다. 공들여 썼고 잘 만들었다. 역시 김형경은 미세한 심리 변화를 묘사하는 데 탁월했다.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가전제품과 같은 존재' '위로조차 조롱처럼 들리는 고통'같은 표현은 영상에선 구현하기 힘든 활자 미학의 승리일 것이다. 문지에게도 마찬가지다. 30년간 본격문학을 주로 다뤄온 출판사라고 해서 시나리오가 원작인 소설을 출간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문지에게만 순수문학을 향한 순결한 의무를 강요하는 것도 무리다.

문제는 문지의 '본격문학' 주장이다. 문지는 A4용지 12쪽에 달하는 보도자료에서 "본격문학과 영화가 함께 소개되는 아주 색다른 실험"이라고 정의하며 크게 네가지 근거를 들었다. ▶순수문학 작가가 썼고▶작품성이 있으며▶새로운 에피소드를 삽입했고▶세부 묘사가 다르다 등이 그것이다. 문지가 제기한 근거 모두에 동의한다. 그래도 본격문학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문지의 주장대로라면 이문열씨의 '삼국지'도 본격문학이어야 공평하다. 이 작품도 순수문학 작가가 썼고 새로운 해석과 구성을 시도했다. 작가도 "내 작품"이라고 말한다. 당연하다. 모든 소설은 작가가 '제 살 파먹는'진통 끝에 생산한 것이다. 그러나 '삼국지'를 순수문학이라고 홍보하지는 않는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본격문학 타령이냐고 할 수 있다. 이 또한 옳다. 문단의 엄숙주의나 순혈주의를 옹호하는 것 또한 아니다. 대중문화 코드를 끌어안은 실험적 글쓰기를 문학터치는 누구보다도 지지한다.

그럼에도 딴지를 거는 건, 상업적 의도 분명한 출판 행위를 새로운 시대의 본격문학이라고 포장한 문지의 태도 때문이다. 굳이 본격문학으로 규정짓지 말았어야 했다. 새로운 소설 마케팅의 시도라고 했으면 외려 신선했을 것이다. 순수창작물만 지원하는 문예진흥원의 문학회생프로그램 관계자는 "이 작품은 심의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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