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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중감감」으로 양형 조정|어음사기 항소심 선고가 의미하는 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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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철희·장영자 부부의 7천억원 어음사기사건은 1백94일만인 15일 사실심을 종결했다.
지난8월9일 종결됐던 1심 판결은 당시 용광로처럼 들끓던 분위기 등이 복합되어 주범 이·장 부부를 비롯 대부분의 관련 피고인들에게 중형이 선고된 응보적 처단의 성격을 띠었었다.
반면 이날의 항소심 결과는 사실심의 속심 성격과 법률심의 중간쯤에서 중중경경의 형량을 중중감감으로 한 양형 조정의 선고라고 할수 있다.
이는 1심에서 10명의 피고인이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으로 풀려난데 비해 2심 재판부가 18명을 무더기로 풀어주고 실형피고인 가운데도 이·장 부부를 제외한 전 피고인의 원심형량을 감해줬다는데서 입증된다.

<항소심판결의 의의>
원심이나 항소심재판부나 이 사건의 주된 골격을 「이·장 부부」-「조흥은행」-「공영토건」-「사채업자」로 연결되는 「시내버스형 범죄」로 보는 것은 일치되고 있다.
즉 이·장부부가 핸들을 쥔 운전사이고 조흥은행이 앞바퀴, 공영토건이 뒷바퀴에 해당하며 사채업자들은 이를 이용하는 승객에 비유할 수 있다.
이·장 부부에게 유독 법정최고형이 선고된 것도 이사건의 성격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임재수 조흥은행장과 변강우 공영토건사장·변태수 공영상무가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고 사채업자들 대부분이 예상을 뒤엎고 짧은 기간이나마 실형을 선고받은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규광 피고인은 이 사건의 1, 2심을 통해 배후세력이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졌으나 인척관계에 따른 묵시적인 배후였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어서 실형이 선고된 것으로 보인다.
공덕종 피고인은 5천만원의 수재가 화근이었으나 재판부의 표현대로 「치명적인 지명」때문에 실형을 면한 것으로 볼수 있다.
사채업자들에게 실형이 선고된 것은 응보적 성격으로 봐야한다. 즉 지하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쉽게 거액을 벌어들이는 것은 땀흘려 노력한 댓가와 비교해 용납할 수 없는 범죄라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이 사건에서 직접 이득을 보았거나 보게 해 준 당사자란 점에서 「이익을 받은 만큼의 불이익」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지점장급들은 한결같이 「상부의 지시」와 「은행에 손해가 없다」는 점을 들어 무죄를 주장했으나 모두 유죄로 인정된 것도 주목할 일.
이것은 은행의 민영화를 앞두고 통제기능이나 통제방법이 약화될 우려가 있는데 대한 「국민재산의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라는 경고적 의미」도 포함된 것이다.
이밖에 많은 피고인들을 집행유예·벌금형 등으로 석방토록 한 것은 이들의 죄질이 골격을 이루는 피고인들보다 가벼운데다 구속 후 거의 6개월 동안 옥살이를 통해 사회적 응징 효과를 거두었고 이들에 대한 국민감점도 해소됐다는 판단으로 가정과 사회로 돌려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남은 절차>
항소심 판결에 불복하면 7일 안에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다.
그러나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대해서는 양형 부당을 이유로 상고할 수 없고 공소사실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기 때문에 피고인이나 검찰 모두 상고대상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장 부부와 임재수 피고인의 변호인은 이미 상고의사를 밝혀 상고가 확실시되고 이규광 피고인도 알선수재를 둘러싼 법리문제로 상고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1, 2심에서 무죄를 주장하던 피고인들은 대부분 2심의 법리오해를 이유로 상고가 예상된다.
검찰의 상고대상은 무죄가 선고된 김용남 피고인정도이나 이미 외화매입에 관해서는 「매각을 목적으로 하는 원매자」아닌 방조범은 처벌대상이 아니라는 일본판례도 있어 과연 검찰이 상고할지는 의문이다.
구치소장 결정으로 병원 수용된 이규광 피고인에 대한 처리절차도 주목거리. 실형이 선고됐으므로 병세진전에 따라 재수감이나 보석·구속 집행정지 등 법적 절차가 필수적이다.
대법원의 구속사건 처리기간은 4개월. 그러므로 이 사건은 늦어도 내년 4월께까지는 대법원에서 모두 매듭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권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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