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25일 겉으론 태연하면서도 곤혹스러운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1997년 불법 대선자금 의혹에 대해 수사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전날 말한 것과 관련해서다.
옛 안기부 불법 도청 자료에 담긴 97년 대선자금 부분 수사를 놓고 검찰은 딜레마에 빠졌었다.
내부적으로는 '독수독과(毒樹毒果)' 이론에 따라 불법으로 얻은 단서로 수사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일부 시민단체들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검찰 일각에서 "헌법보다 상위법인 국민정서법이 문제"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검찰의 의지와 상관없이 '수사 불가'라는 선을 그은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간부는 "증거가 있으면 수사하고, 없으면 안 하고,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은 수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노 대통령의 어제 발언은 이런 원칙을 정치적 수사(修辭)로 풀어 말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불법 도청 내용에 대한 수사가 원칙에 어긋나는 만큼 법률가 출신인 노 대통령이 이를 확인해준 것이라는 반응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수사에 간섭하는 듯한 발언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대검찰청의 한 간부는 "수사는 계획대로 진행돼야 한다. 대통령이 무슨 말을 했다 해서 수사가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수사의 원칙을 무시하라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확대 해석은 경계했다.
즉 원칙대로 해도 수사결과가 노 대통령의 뜻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깔려 있다.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을 지휘하는 황교안 2차장검사는 "수사 담당자가 대통령 말에 뭐라 하는 게 부적절하다"며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수사담당자들이 좀 지친 모습"이라며 숨고르기를 통해 수사 방향 등을 재검토할 뜻도 내비쳤다.
장혜수.문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