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의 계절을 보내고 있는 스타 출신 감독의 맞대결에서 허재(49) 전주 KCC 감독이 이상민(42) 서울 삼성 감독을 울렸다.
프로농구 KCC는 7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삼성을 93-77로 꺾었다. 그러나 9위 KCC(7승16패)도 최하위 삼성(5승19패)도 여전히 탈꼴찌를 다투는 신세다. 올 시즌 나란히 9연패도 경험했다. 두 스타 감독의 현역 시절 명성에 비하면 초라한 순위다.
허 감독은 선수 시절 ‘농구 대통령’이라 불렸다. 1994년 세계선수권에서 득점 5위(평균 19.3점)에 올랐다. 미국프로농구(NBA) 진출 얘기가 오가기도 했다. 현역 시절 ‘컴퓨터 가드’로 이름을 날린 이 감독은 9년 연속 올스타 팬투표 1위를 차지한 ‘영원한 오빠’였다.
개막 전 4강 후보로 꼽힌 KCC는 3시즌 연속 플레이오프행 불발을 걱정할 처지다. 김민구(23)가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팀에서 이탈했다. 2년간 공익근무를 마치고 복귀한 하승진(29·2m21cm)은 올 시즌 도입된 국제농구연맹 룰의 가장 큰 피해자다. 심판들이 골밑 몸싸움에 관대해지면서 높이의 우위를 활용하기 어렵게 됐다. 인삼공사에서 영입한 김태술(30)은 인천 아시안게임 차출로 동료들과 호흡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다. 감독으로 두 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끈 허 감독의 ‘레이저 눈빛’도 통하지 않고 있다.
‘초보’ 이 감독은 아직도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지난 3시즌간 6강 플레이오프에 딱 한 번 오른 삼성은 전력 보강이 부족했다. 설상가상 가드 박재현(23)과 센터 키스 클랜턴(24)이 부상으로 이탈했다. 이 감독은 자신감이 떨어진 선수들을 위해 심리치료도 해봤지만 효과가 없다.
양 감독은 코트 밖에서도 시련이 있었다. 이 감독은 지난달 30일 오리온스전 패배 후 기자회견에서 심판 판정에 불만을 나타냈다가 제재금 70만원 징계를 받았다. 허 감독은 지난 5일 오리온스전 후 상대 추일승 감독과 악수를 하지 않았다. 4쿼터에 크게 앞선 팀은 작전타임을 부르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추 감독이 깼다는 게 이유다. 한 농구인은 “농구는 버저가 울릴 때까지 머리 박고 공격해야 한다”며 허 감독의 행동을 지적했다.
경기 전 만난 이 감독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그는 “목청껏 지시해 그런가보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현역 때 12시즌 중 7차례나 챔프전에 오른 이 감독은 “선수 시절 이기는 게 익숙했는데…”라며 “감독과 선수는 어머어마한 차이가 있더라”고 말했다.
지난 5일 삼성을 꺾은 유재학(51) 모비스 감독은 “이상민 감독은 정말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 단맛, 쓴맛 다 봐야 느는 것 아니겠나”고 말해줬다. 2005-06시즌 KCC 감독 부임 첫해 4강에 오른 허 감독도 “당시 이상민·조성원·추승균 등 노장 선수들이 알아서 잘 해줬다”며 이 감독의 고충을 이해했다.
하지만 흰머리가 부쩍 는 허 감독이 남의 팀 걱정할 처지는 아니다. 그는 팀의 부진에 대해 “고민을 너무 많이 해 이제는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다”고 장탄식을 했다.
◆김지후 맹활약, KCC 승리=올 시즌 1승씩 나눠 가진 두 팀의 세 번째 대결 승자는 허재 감독이었다. 허 감독이 지난 9월 신인드래프트에서 아들 허웅(21·동부) 대신 뽑은 김지후(22)가 3점슛 5개 포함 22점을 몰아쳤다. 하승진(18점·9리바운드)도 리바운드를 잡다가 공중에서 ‘쿵’하고 떨어지는 등 몸을 사리지 않았다.
KCC는 ‘슬로 스타터(slow starter)’다. 2008-09시즌 초반 최하위에서 올라와 챔프전을 제패했다. 2010-11시즌에도 12월까지 7위에 머물다가 뒤늦게 발동이 걸려 정상에 올랐다. KCC는 9연패 탈출 후 최근 3경기에서 2승을 거뒀다. 하승진은 “연패에는 오만가지 이유가 있다. 우리 모두가 자기가 해야 될 것을 못해 진 거다”면서 “슬로 스타터가 될 거라 믿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최다실점팀(평균 81.3점) 삼성은 93점이나 내주며 4연패 늪에 빠졌다. 5승19패로 탈꼴찌가 점점 어렵게 된 이 감독은 “조금 더 근성있게 해야 한다”고 선수들을 독려했다.
울산 모비스는 7일 원주 동부를 87-78로 꺾고 19승4패로 선두를 질주했다. 2위 서울 SK는 고양 오리온스를 74-64로 눌렀다.
전주=박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