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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비록 허무한 내용이라도 날조된 미담보다 낫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개가, 더구나 한살짜리 개가 물에 빠진 어린이를 물 속에 뛰어들어 구해냈다는 뉴스는 참으로 감격적인 것이었다. 더구나 그 개는 딴 주인에게 팔려가기 전에는 그 어린이의 집 개였었는데, 주인이 바뀐 후로도 어린이와 늘 사이좋게 지내며, 따라 다녔었는데…. 이런 후문은 그 충견의 뉴스를 더욱 감동어리게 했었다.
사람도 옛정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세상에, 그뿐인가 배신을 밥먹듯이 하는 세상에…. 게다가 그 개의 우정과 충심의 용기가 성공을 거두었다는 데에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만번 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얘기는 과장된 얘기고, 가장 핵심인 「어린이가 물에 빠졌었다」는 것이 허위였다고, 각 보도기관에서 정정 보도을 했다.
그 보도를 들으니, 왠지 머리가 멍해진다. 그저 멍해지지, 속였다고 화는 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첫째, 과장은 되었으나 어떤 이득을 노린 고의도 악의도 없었으며 대상들이 어린이와 어린 개였기 때문이 아닐까. 공기 좋고 아름다운 농촌들에서 어린이 서넛이 돌아다니며 노는데, 거기에 삽사리 한마리가 꼬리를 치며 따라 다니는 광경은 상상만 해드 신선하고 평화롭다.
그런데, 어린이가 미꾸라지를 잡으려다가 그만 물에 빠졌는데 삽사리가 뛰어들어…. 스토리로서도 멋진 전개가 된다.
멍하고 허전했던 기분이 가시고 나니 충견사건은 의외로 몇 가지 꼭 생각해야할 점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첫째는 보도의 정확성을 국민이 얼마만큼 믿을 수 있는가다. 이번 일은 악의도 고의도 없는 아름다운 얘기이고, 그것에 갈채를 보내는 국민의 심정은 잠시나마 참으로 선하고 아름다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얘기가 아니고, 죄 없는 사람을 마치 죄지은 양(고의도 악의도 없었다손 치더라도) 부정확한 보도를 했었다면 당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또 그런 유의 허위기사에 대해서 이번처럼 정중히 같은 입에서 정정하고 사과한 일이 있었던가.
보도의 생명은 정확이라는것을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생명처럼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흘러가는 말조차 식자들은 무정확을 기피한다. 하물며 글을 쓴 사람의 사후까지도 남으니 펜의 책임은 사후까지도 따라다니는 막중한 것이 아닌가.
그러면 정확만이 전부인가. 그렇지는 않다. 정확하다 하더라도 국민·국가의 안보나 사람의 생명과 명예를 위해서는 쓰지 않는 부분도 있어야한다.
좋건 나쁘건 기사에 과장이 있는 것은 위험하고 후진성을 면치 못한 일이다. 충견사건도 TV카메라까지 들이대니, 그것이 허위라는 말을 할 수도 없고, 억지 춘향으로 촬영당할 때의 어린이들 심정이며 마을 사람들의 기분은 얼마나 착압했을까.
미담이란 문자 그대로 흐뭇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것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겐 훈훈한 인정을 느끼게 함으로써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꺼져가는 잿더미 속에서 예상못했던 불씨를 발견한 듯한 반가움을 느끼게 할 것이다.
또 미래를 사는 사람들에겐 좋은 교훈과 보람있는 인생의 귀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담이란 있는 사실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풀이하는데서 얻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결코 어떤 목적을 위해 날조되거나 터무니없이 꾸며져서는 안될 것이다.
미담은 그 허구성이 드러났을 때 오히려 더욱 추악한 몰골로 전락되고 만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닐까. 진실이 비록 쓰리고 허무한 것이라 하더라도 날조되거나 호도된 미담보다는 아름다운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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