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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깊이보기] 여행길에 맞닥뜨린 황혼이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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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첫 방영을 시작한 이래 텍스트를 아름다운 영상으로 옮겨온 KBS 'TV문학관'으로선 고화질 HD촬영이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수단이다.

하지만 영상미에 대한 강박관념이 메시지를 흐리는 함정에 빠뜨리기도 한다.

11일 오후 10시 KBS-2 TV로 방영될 HDTV문학관 '누구에게나 마음 속의 강물은 흐른다'(극본 김병수, 연출 장기오)는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다.

지난 7일 시사회에서 먼저 감상한 이 드라마는 KBS가 네번째로 선보이는 HDTV작품답게 전국 6개 시도의 사계를 담은 화려한 영상이 90분 내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고민에 시청자들이 같이 몰입하는 데는 자칫 방해가 될 수 있겠다는 느낌을 줬다.

공지영의 소설집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에 실린 단편 '길'을 각색한 이 작품은 5060세대인 한 부부의 자동차 여행 여정을 따라가며 그들의 회상을 삽입한 로드무비 형식이다.

오직 일에만 매달려온 TV방송사 촬영감독 경재(전무송 분)는 경제위기로 인해 명예퇴직의 압력을 받고 있다. 어느 날 아내인 순애(김윤경 분)가 느닷없이 여행을 제의한다. 신혼여행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떠나는 둘만의 여행이다.

수학교사였던 순애는 일에 중독된 남편 대신 중풍에 걸린 시어머니와 셋이나 되는 시동생들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외아들 승환을 키우는 일도 혼자 몫이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아들은 시위 도중 구타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순애는 아들이 숨어 지내던 산장으로 향하는 그 여행길에 경재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삶은 언제나 지나간 다음에야 생생해진다는 것을 알았다"며 "더 늦어버리면 또 다시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사실 명예 퇴직과 황혼 이혼 등의 소재는 좀 진부하다. 또 이혼여행이 될 수도 있는 이 여행에는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는 가을을, 경재와 젊은 여성 화가와의 로맨스엔 봄비와 하얀 벚꽃을 각각 배경으로 한 것 등은 상징성과 영상미를 지나치게 의식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중견 연기자들의 열연과 여운을 주는 마무리 등으로 5060세대의 삶과 가정의 의미를 되돌아보자는 메시지 전달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 드라마는 원래 3월 방송공사창립기념작품으로 기획됐던 것. 제작 도중 '드라마 내 흡연장면 추방' 조치가 나오는 바람에 흡연 장면을 전부 다시 찍느라 방영일정이 늦어졌다고 한다. 경재가 고민하는 장면들이 일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으로 이해해야 할 듯 싶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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