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위협하는 소 「포함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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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소련은 아시아에서 19세기식 포함외교를 벌이려는 것일까. 아니면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군사대결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요즘 들어 미국과 소련이 상호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소련은 극동에서 아라비아반도에 이르기까지 태평양·인도양 일대의 군사력, 특히 해군력을 부쩍 강화하고 있다.
이 지역 소련군사력의 현황과 전략적 배경을 살펴본다.
인도양항로의 요충에 있는 작은 섬나라 세이셸에서 지난여름 쿠데타미수사건이 벌어졌을 때의 일이다. 수도인 빅토리아 항에 3척의 소련함정이 들어와 닻을 내렸다. 구축함과 미사일 탑재프리기트함, 그리고 보조함정 각 1척씩이었다. 이후 열흘, 섬 위에선 「알베르·르네」대통령의 좌파정부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급히 불러온 원군 1백 명의 도움을 받으며 반정부군을 진압하는 동안 이 포함들은 듬직하게 함구에 버티고 있었다. 9월초 세이셸 정정이 안정을 되찾은 뒤에야 배들은 닻을 올려 인도양에 고정 배치돼 있는 모함대로 되돌아갔다.
소 해군이 이 같은 「평화적 포함외교」방식으로 세이셸내정에 끼어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해 11월 남아프리카 출신 용병들이 여객기를 타고 빅토리아공항을 급습,「르네」정부를 뒤엎으려 했을 때도 인도양함대의 순양 함과 프리기트 함 등 2척이 빅토리아에 입항해 전투가 끝날 때까지 머물렀었다.
서방군사전문가들은 세이셸사건에서 보여진 소련의 움직임이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고 분석한다. 즉 △소련해군이 발트해와 동해 등 두 본거지에서 멀리 떨어진 세계 곳곳에 진출해 소련외교의 중요한 보조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서방측에 정치·경제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지극히 긴요한 동남아와 인도양지역에 대한 소련의 압력이 커가고 있다는 것이다.
미 해군정보국장인 「섬너·샤피로」소장은 『소련은 가장 유능한 외교관은 「전함」이란「크롬월」의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있다』고 말하고, 특히 일본 북쪽 캄차카반도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에서 베트남·아든·이디오피아에 이르는 아시아해역 요소요소에 소련해군기지가 신설되거나 배치전력이 증강되고있음을 중시했다. 일본이 수입하는 원유의 90%, 유럽행 원유의 60%, 미국행의 20%가 통과하는 항로대가 직접 위협받게 됐다는 얘기다.
소련 태평양함대는 지난 68년 처음 인도양에 진출했다. 이에 대응해 태평양의 미 제7함대도 인도양으로 활동영역을 넓혔다. 미국은 또 이란의 「팔레비」정부에 대한 군사지원을 늘리고 인도양의 영국령 디에고가르시아섬을 급히 지원기지로 키웠다.
그러자 당시 중공과 국경분쟁이 한창이던 소련은 미·중공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 쪽의 육상 및 해상군사력을 대폭 늘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소련은 현재 중공과의 접경지대를 비롯한 동부군구들에 전 국방력의 3분의 1가량을 배치하고있다. 지상에는 주둔병력이 50만, 탱크 1만 2천대, 장갑전투차량 1만 2천 5백대, 각종 포 5천문 등이 있으며 태평양함대는 공격용 잠수함 1백 20∼l백 60여 척, 전투함80척, 전투기 3백대를 갖고 있다. 공군도 아시아지역에 1천 2백대의 각종 비행기를 배치했으며 핵미사일 기수도 자꾸 늘고 있다. 최근엔 새로 개발된 막강한 전략폭격기 백파이어가 적어도 50대 이상 실전 배치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미국은 특히 베트남 캄란만에 있는 옛 미 군사시설을 소련이 빈번히 사용하고있는 점을 주목한다. 보통 10∼11척의 군함이 캄란만 기지에 배치돼있다. 이중엔 크루즈미사일 탑재 잠수함 l척, 전투함 3척, 정보수집함 1척 등이 포함돼있다. 이 밖에 TU-95 베어정찰기 4대가 볼라디보스토크 기지에서 이곳에 포대로 파견돼 미 함대가 지배하는 항로상공을 날면서 정보를 수집한다.
아라비아반도의 아든과 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에도 이와 비슷한 기지가 있다.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미국의 제패권이 도전 받고 있는 겁니다』라고 미국의 한 정보관계자는 말한다.
게다가 미국 쪽을 보면 태평양의 주요거점인 필리핀과의 군사협정은 내년에 경신될 예정이지만 병약한 「마르코스」대통령이 언젠가 사라진 뒤에도 필리핀이 이제까지처럼 반석 같은 동맹국으로 남아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노동당지도자인 「빌·헤이든」같은 사람은 지난 7월 자신이 집권하면 미국의 핵무장전함의 오스트레일리아 기항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했었다.
또 인도양지역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나라인 인도는 지난 9월 미국과 영국에 대해 영령 디에고가르시아 섬에 있는 양국 합동기지를 폐쇄하고 이 섬을 최근 좌익정권이 들어선 인근 모리셔스에 돌려주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소련이 어떤 속셈으로 아시아해군력을 급히 증강하고 있는지는 전문가마다 해석이 구구하지만 「레이건」정부는 소련의 궁극적 목표를 다음의 네 가지로 본다. 첫째 충돌이 벌어질 경우 일본을 무력화하고, 둘째 폐르시아만과 유럽을 잇는 석유공급로를 차단할 수 있는 전략적 위치를 확보하며, 세째 군사력 과시로 동남아 비공산국가들을 위압함으로써 캄보디아협상 등 정치문제에 영향을 주며, 네째 서방과 중공간의 전략적 협조관계를 제한 혹은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영 파이넨실타임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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