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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재일학자가 본 한국 미술, 그것은 아픔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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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쾌대의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일부. 서경식 교수는 이 그림에서 일본에 건너가 서양화를 배웠던 식민지 조선 청년화가의 분열된 자의식을 봤다. [사진 반비]

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반비
388쪽, 1만8000원

어렵사리 유럽에 가서 미술을 만났던 30대 재일 조선인 청년은 이제 환갑을 넘겼다. 조국에 유학 갔다가 간첩사건에 연루돼 투옥된 두 형의 구명을 위해 엠네스티를 비롯한 국제인권단체를 찾아간 여행길에서 그는 서양 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지하실에 갇힌 사람이 저 위에 조그만 창구가 열려, 그걸 통해 바깥에 바람이 불고 있음을, 바깥에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됐다고 할까요.”

 3일 서울 문래동 창작촌에서 만난 서경식(63) 도쿄케이자이대 교수는 『나의 서양미술 순례』(창비, 1992)를 쓰던 시절을 이렇게 돌아봤다.

서양미술을 만나며 숨쉴 수 있었던 젊은이가 이제 우리 미술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와 가족에게 곤경과 슬픔을 줬던 조국의 미술이다. 이 긴 미술 순례는 그를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그때 저는 30대였고, 백수였고, 세상을 절망적으로만 보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과거의 미술 작품들과 대화를 나누며 감각과 사유의 틀이 확장됐습니다. 제가 처한 상황의 어려움은 변하지 않았지만, 제 자신을 더 넓은 범위에서 더 긴 시간의 척도에서 볼 수 있게 됐어요.”

서양미술 순례를 다닐 때만큼 그는 고독하지 않다. 그러나 경계인의 예민한 의식은 ‘우리’라는 포용의 말이 역으로 배제의 언어로 작용한다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학창 시절 ‘우리 일본인에게는 이 같은 미의식이 있다’고 할 때 나는 ‘이 나라가 우리나라가 아닌데, 과연 내 나라는 어디지?’하고 생각했다. 한국서 지낼 때 ‘한국인이면 이런 걸 좋아합니다’라고 소개를 받으면 ‘저게 아름답지 않으면 나는 한국인이 아닌건가’ 의문이 들었다”는 그다.

 그래서 책의 제목은 『나의 조선미술 순례』이며, 책 속 우리 미술이라는 표현은 ‘우리/미술’로 표기했다. 조선시대 미술 이야기가 아니다. 부모 세대가 “우리 조선 사람들은…”이라던 그 조선이다.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차별의 멍에를 지게 됐고, 민족분단 과정에서는 이데올로기의 짐을 떠안았던 말, 학대받았던 호칭 ‘조선’을 복권시켰다.

책은 흔한 ‘한국 미술 길잡이’도, ‘꼭 알아야 할 우리 대표 미술가선’도 아니다. 5·18을 겪은 민중미술가 신경호로 시작해 한국 현대 미술의 스타 정연두,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 윤석남, 월북 작가 이쾌대(1913∼65) 등을 거쳐 벨기에 입양인 미술가 미희(나탈리 르무안)로 마친다. 책에서 다룬 8명의 작가 중 일부는 소위 주류 미술사에서 거론되지 않는 이들이다.

 저자는 이 같은 자기만의 리스트를 들며 ‘이것이 자국 미술’이라며 근대 국가에서 하나의 정치적 제도로 기능했던 미학·미술사의 서사를 해체한다. 예컨대 ‘나는 조선의 화가라는 표명’으로 해석돼 온 이쾌대의 자화상에 대해 그는 “이 자기분열적인 자화상은 분열을 강요당한 민족상의 반영, 상황에 대한 강한 위기감과 화가로서 시대와 마주하려는 의지가 읽힌다”고 썼다.

 “‘한국 미술이라면 뭔가 고상한 핵심이 있으니 그걸 알아야 한다’라는 것은 잘못된 교양주의입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미술을 보고 성찰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제가 이렇게 했듯, 여러분도 할 수 있다’는 제안입니다.”

제목도 내용도 편치 않은 책이지만, 그 때문에 빛나는 책이다. 저자는 예민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요즘 우리 문학을 순례 중이다. 식민지 지배자의 언어로 써야 정밀하게 뜻이 통할 수 밖에 없다는 태생적 아이러니를 지닌 그가, 모국의 문학을 다룬 첫 저작을 준비하고 있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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