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기자의 뒤적뒤적] 정치? 만날 침만 뱉어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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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참여하는 시민 즐거운 정치
이남석 지음, 책세상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연단에도 오를 권리가 있다."

혁명의 불꽃이 휩쓸던 18세기 프랑스에서 터져나온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선언'의 일부랍니다. 이를 외치던 구즈라는 여성 혁명가는 결국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네요.

반면 같은 혁명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상테르란 이는 "변두리 지역에 사는 남성들은 일터에서 돌아올 즈음에는 집안이 말끔히 치워져 있기를 바라지, 마누라가 집회장에서 돌아오는 모습을 보기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네요. 인권을 부르짖은 혁명가이기 전에 남성으로서 파리 여성들의 정치 활동에 반대한 이유랍니다.

'즐거운 정치'라는 제목이 의아해 펼친 이 책에서 만난 구절입니다. 제 1장에 실렸더군요. 실은 구즈나 상테르는 처음 듣는 이름이고 '여성 권리선언'이 있었다는 사실도 낯섭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근대화와 함께 절로 주어진 참정권, 특히 여성 참정권이 거저 생긴 게 아니란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구절만 건져도 값지지만 '청소년을 위한 정치 교과서'를 표방한 이 책이 여성의 정치적 권리만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시민의 형성으로 글머리를 열고는 정치적 포르노, 대물림의 사회, 양심적 병역 거부, 기업 도시 등 오늘 우리 사회의 굵직한 이슈까지 조명합니다. 그리고는 현대 민주국가에서 잔소리꾼이나 훈수꾼 노릇을 하는 시민이 필요하다며 '키비처(Kibitzer)'란 개념을 소개하고 마무리합니다.

우리는 흔히 정치며 정치인을 외면하거나 손가락질합니다. "그 사람은 정치적이야"라고 하면 은근한 비난으로 해석될 정도입니다. 그러나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선 정치 과정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침만 뱉거나 수상한 뒷소문만 즐겨서는 안 됩니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이란 정치인의 수준만이 아니라 그 국민의 정치 의식 수준도 뜻합니다. 정치가 뭔지, 바람직한 정치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건강한 정치'를 위해 무엇을.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할 때 이 책은 유용합니다. 체계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삽화와 소설, 영화 등 풍부한 읽을거리를 동원해 쉽게 읽히는 미덕도 갖췄습니다. 논술을 준비하는 자녀와 토론이 가능해지는 것은 이 책을 읽은 덤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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