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교과서 왜곡파동의 자초지종|일문부성 출입기자들이 「침략」을 「진출」로 오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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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금년여름 일본을 강타한 태풍중에서 그 위력이 가장 컸던 것은 다름 아닌 왜곡교과서열풍이었다. 일본정계와 교육계를 휩쓴 이 바람의 후유증이 채 가시지 않은 일본에서는 요즘 교과서바람을 걷잡을 수 없는 태풍으로 몰고 간 배경에는 교과서를 왜곡한 분부성자체의 잘못뿐만 아니라 일부내용은 오보를 내고서도 이를 시정하지 않았던 일부언론들의 책임도 크다는 매스컴비판론이 일고있다.
교과서왜곡문제에서 시비의 주요대상이었던「침략」을「진출」로 표기한 내용이 실제로는 교과서에 기술돼 있지 않았는데도 문부성 출입기자들이 오보했다는 것이다.
일본언론들은 이 같은 오보를 내고서도 이를 정정보도한 것은 문부성에 출입기자를 내보내고 있는 17개 신문·방송·통신사중에서 산께이 (산경) 신문 단 1개사 뿐이었다.
이 신문은 지난 9월 7, 8일자에서 각각 6, 7단 크기로 「독자에게 깊이 사과합니다. -교과서문제 침략↓진출오보의 경과」「교과서 문제, 중공측 항의는 근거없어- 발단은 매스컴의 오보때문이었다」 라는 정정기사를 냈다.
「주간문춘」은 2일 뒤인 9월9일호에서 「놀라운 일! 교과서에는 침략을 진출로 바꿔 쓴 사실이 없다. 일본TV·동경·조일·북해도신문 등의 역사적 대오보」라는 제목아래 오보의 전말을 상세히 실었고 월간 「제군」은 10월호에 「만견이 허공에 짖어댄 교과서문제」라고 유수한 매체들의 오보를 지적했다.
일본학습원대의「고오야마」(향산건일)교수는 한발짝 더 나아가 오보사건의 배경을 면밀히 추적, 분석한 결과를 「신문기자의 윤리를 묻는다」라는 제목으로 「문예춘추」 11월호에 기고, 정보오염의 메커니즘을 낱낱이 파헤쳤다.
「고오야마」교수에 따르면 교과서문제에 관한 역사적대오보는 문부성기자실에서 만들어졌으며 그 경위는 다음과 같다.
일본문부성은 지난 6월16일 81년도 검정을 끝낸 중·고교교과서견본 5백93권을 기자실에 배부했다. 문부성출입기자단은 이 가운데 고교 일본사·세계사 각 10점, 지리4점, 윤리3점, 정치·경제5점, 국어 및 국민학교 국어교과서를 골라 각 사 기자가 분담.
그 결과를 리포트로 정리해 보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문부성에 상주하고 있는 매체는 조일·매일·독보·일경·산께이·동경(중일)·북해도·서일본·경도·NHK·일본TV·TBS·부사TV·TV조일·공동통신·시정통신등 17개사.
그런데 6월22일 일본TV기자가 맡아 검토한 상교출판의 『세계사』 리포트에 문제의 『「일본군이 화북에 침략하니…」가 수정의견에 따라「일본군이 화북에 진출하니」로 되었고 「중국에의 전면침략」 이 「전면침공」으로 되어버렸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것은 사실과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일인지 그대로 기자단 전체의 리포트가 되어 각 신문·TV를 통해 일제히 보도되었다.
6월26일자 조간신문은「우경화」「역사왜곡」「침략미화」등 센세이셔널한 교과서 캠페인을 시작, 이 오보에 근거한 논평·해설기사들이 계속 지면을 장식했고 방송도 연일 떠들어대기에 바빴다.
이렇듯 엄청난 파문을 야기시켰음에도 오보를 시인하고 나선 산깨이신문기자는 출입기자단에서 제명시키기 위한 투표까지 실시하는 등 오히려 궁지에 몰렸다.
문부성출입기자단은 산께이신문의 정정기사가 나간 직후 출입기자가 기자실의 규율 (기사작성과정등을 누설해서는 안된다는 등)을 어겼다는 이유로 등원정지처분을 내리기로 의견을 모아 3일 후 비밀투표에 붙인 결과 기자클럽출입금지와 기자회견, 강연 등의 참석금지등에 찬성한 것이 5개사, 반대 3개사, 보류 5개사, 기권 1개사, 결석 2개사 등으로 결국 처분을 보류하기로 결정했던 것.
「고오야마」 교수는 『일본언론인 풍토의 보수편향성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 바로 이번의 교과서 오보사건』이라고 지적했다.
【동경=신성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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