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계층 갈등 부추겨 부동산정책 유지하겠다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이 이달 말 발표될 부동산 종합대책의 방향을 밝혔다. 그는 이와 관련, "몇 년만 버티면 다음 정권에서 정책이 무너질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옳지 않다"며 "(앞으로 나올)부동산 정책을 지탱할 만한 이해관계집단을 만들어 놓겠다"고 말했다. 부동산에 대한 세금 중과나 새로운 주택공급 방식으로 이득을 보는 계층과 지역을 만들어 이 정권이 끝난 후에도 이 제도가 지켜지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그동안 헌법처럼 바꾸기 힘들게 만들겠다고 입버릇처럼 외치던 부동산 제도의 실체가 결국은 국민을 계층별.지역별로 편을 갈라 이해관계의 사슬로 묶겠다는 것임을 시사한 셈이다.

그는 구체적인 예도 들었다. "새로운 부동산 세제로 인해 증가하는 세수 몫을 특정 부문에 활용하면 그로 인해 득을 보는 사람들이 생기고, 국토의 일부분에서도 이해관계가 생겨 (이득을 보게 될)사람들이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감시하고 노력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를 찬찬히 뜯어보면 '수도권에 부동산을 많이 가졌거나 고가의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로부터 세금을 많이 거둬 그 돈을 무주택자나,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이로 인해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나중에 제도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어도 결사적으로 막을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계층 간, 지역 간 갈등과 대립을 극대화시켜 제도를 지키겠다는 얘기다. 못 가진 사람들의 박탈감에 불을 질러 가진 자들의 불만과 반발을 억누르겠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가진 자로부터 빼앗아 못 가진 사람에게 나눠주자는 활빈당식 발상 아닌가. 이 나라가 과연 그렇게밖에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인가. 만일 새로운 부동산 제도가 더 큰 부작용을 불러온다면 어쩔 것인가.

국가의 정책이 이런 식의 조악한 정의감과 왜곡된 평등주의에 좌우돼서는 곤란하다. 조세제도가 계층 간 갈등과 지역 간 대립을 조장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부동산 정책이 못 가진 사람들의 한풀이와 나눠먹기의 용도로 쓰인다면 앞으로 이 나라의 장래는 기약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