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사에서의 화엄사상 조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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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흔히「화엄」을 불교사상의 진수이며 불가 교학의 대목이라고 한다. 그래서 수많은 불교경전 중에서도 『화엄경』은 최고·최상으로 손꼽힐 뿐만 아니라 그 넓이와 깊이가 시냇물이나 강물격의 여타 경전에 비해 바다와 같다고 비유된다.
동국대 불교 문학연구소는 창립 2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29∼30일·동국대 교수 세미나실)를 통해 이 같은 위대한 화엄사상이 한국 불교에서 전개돼 온 역사적 과정을 조명, 불교사상 처음으로 한국 화엄의 집대성을 시도했다.
모두 11명의 각 대학 교수들이 화엄사상 연구논문을 발표한 이 세미나는 원효·의상·표원·균여·의천·보조·체원·김시습 등의 저술에 나타난 한국적 화엄의 전개를 고찰하고 현대적 수용방향을 모색했다.
한국 불교가 화엄경구를 수용, 소화하기 시작한 기록은 불교사 연구의 다시없는 고전인『삼국유사』에 나타난 신라 때부터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영태교수(동국대)는 『삼국유사』에 나타난 자장·원효·의상 등이 전개한 신라 불교 화엄사상의 특성을 「화엄정토사상」으로 요약, 화엄유연불토관과 현실적 화장세계사상이라는것-.
즉 대승불교의 성불국토를 이룩, 현세를 부처님이 계시는 청정한 세계와 같은 낙원을 이루자는 것이다.
화엄가와 단가는 신라 불교 이래 거듭 합일을 모색, 고려 보조국사에 이르러 교종의 왕자격인 화엄종의 오·수·증이 단종의「심즉불」과 회통하게 된다.
체원 등의 저술을 통해 본 고려후기의 화엄사상은 의상이 개창한 신라 화엄종이 왕실의 이념적 역할을 담당했던데 반해 관음신앙 및 이를 바탕으로 해 기층사회를 풍미한 실천신앙으로서의 정토신앙으로 크게 발전됐다. (채상식교수·부산대) 물론 체원의 화엄관도 의상 이래 화엄종의 핵심 실천신앙인 관음신앙을 강조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체원은 민간대중의 현실적 자각과 발원을 기대하고 전통신앙과 화엄종의 실천신앙을 결합시킨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금번신화』의 작가로 널리 알려졌고 생육신의 한 사람이기도 한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불교 저술『법계도주』 등을 통한 단·교(화엄)일치노력은 크게 주목할 한국 화엄사상의 전개다.
김시습은 의상이 화엄교관의 이해를 위해 30구 2백10자로 지은『법성게』를 다시 풀이해 흔히 현·묘·심·성으로 압축하는 화엄사상의 근본을 법성에 귀결시켰다.
조선조 화엄은 단·교를 분리하기보다는 『원융한 법성이란 본래 그 이름이나 형상이 없지만 말과 언구를 빌게 되면 경론이 된다』는 단교일여사상이었다는 것이다. (목정배교수·동국대) 김시습의 화엄사상은 우람한 장륙존상 같은 불상이나 들녘의 보잘것없는 풀 한 포기 모두가 동일원상에 있다고 보고 현상에서 실상으로 오득, 현현시키려는 심오한 철학을 전개했다.
한국 불교의 화엄사상은 현대적 의미로 해석할 때 실상의 자각을 이끄는 견인차의 역할을 담당, 추락한 물질문명의 퇴폐나 인간도덕을 바로 잡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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