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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바늘의 문화는 끝났는가(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모처럼 시골에 가 보았읍니다. 노랗게 물든 벼이삭의 물결이 단풍보다도 아름답습니다. 어렸을 때 「훠어이 훠어이」 새를 쫓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순간, 나는 그옛날과 전혀 색다른 공간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읍니다. 허수아비 말입니다. 벼를 실컷 까먹고 허수아비에 올라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 담대한 참새들 이야기가 아닙니다.
허수아비는 말할 것도 없고 실제 사람이 다가서도 비둘기처럼 날아가지 않는 참새들을 나는 여러번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어느 공원엘 가도 사람과 참새가 친하게 놀고 있는 광경은 결코 색다른 풍경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내가 놀란 것은 그런 참새들이 아니라 바로 허수아비가 걸치고 있는 옷들이었읍니다.
사람들이 입다가 버린 옷을 마지막으로 차지하게 되는것은 허수아비들이지요.
여름내 농부들이 쓰고다니던 밀짚모자와 낡고 해진곳을 깁고 또 기워 이제는 더이상 기울수 없이 되어버린 베잠방이를 입고 있었던 허수아비들은, 사람의 체온과도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리고 막대기로 세운 것이지만, 그 옷들 때문에 진짜 사람의 체취를 풍기기도 했읍니다.
과학자의 말을 들어보면, 참새들이 허수아비를 보고 도망치는 것은 그것이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옷에 묻어있는 사람의 체취탓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허수아비들이 걸치고 있는 옷은 인간의 체온을 전혀 느낄수 없는 비닐들이거나, 어쩌다 사람옷을 얻어 입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낡고낡은 베장방이가 아닙니다.
도대체 어느 것을 보아도 바늘로 기운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읍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아무리 가난하게 사는 벽촌엘 가보아도 잔등이를 조각보 처럼 기워입고 다니는 사람은 구경할수 없이 되어버렸읍니다. 그전에는 옷뿐만이 아니라, 양말이나 보자기나 자루나, 옛날의 물건들을 깁고 때워서 쓰는 것들이 많았었지요.
만화책에 흥부처럼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등장하면 기워 입은 바늘자국이 으례 빈곤의 등록상표처럼 그려져 있던 것을 볼 수 있었읍니다.
멀쩡한 옷을, 그것도 패셔너블한 원색의 옷을 걸치고 있는 허수아비를 보고 우리는 그냥 풍요의 시대라고 손뼉을 칠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옷을 기워입지 않는 오늘의 생활풍속에서는 바늘이 점차 유물이 되어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어머니와 우리들의 아내, 그리고 그 딸들의 여성문학를 상징했던 바늘이 소실되어간다는 것은 단지, 그작은 쇠붙이가 사라져 간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인간은 같은 강철로 두개의 다른 도구를 만들었읍니다. 하나는 칼이요, 하나는 바늘이었읍니다. 이 두개의 도구는 밤과 낮처럼 이항대립의 문화를 상징해주고 있읍니다. 칼은 주로 남성들의 것입니다.
그길은 전쟁터로 뻗쳐있고 거기에는 피와 승리와 권력과 지배가 있읍니다. 칼은 전쟁이 아니라도 무엇인가를 자르기 위해서 존재하는 강철입니다. 시퍼런 칼날은 쪼개고 토막내고 갈라냅니다. 칼의 언어는 분할과 단절의 문법으로 엮어져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어머니. 그리고 옛날 사랑스러운 아내들이 등잔불 밑에서 긴밤을 견뎌냈던 것은 바늘이었읍니다. 바늘의 길은 안방으로 향해 있읍니다. 그 길에는 아이를 낳고 기르며 끝없이 갈라지는것, 떨어져나가는것, 그 마멸과 단절을 막아내는 결합의 의지가 있읍니다.
바느질은 칼질과 달리 두동강이가 난 것을 하나로 합치게 하는 작업입니다. 바늘의 언어는 융합과 재생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지요. 개구장이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싸우고 돌아왔을때, 어머니는 바늘을 들고, 그 터진 옷깃이나 옷고름짝을 기워줍니다. 아닙니다.
그런 싸움이 아니라, 시간은 가만히 얌전하게 있어도 인간의 옷을 해지게 만들지요. 어머니는 이 시간의 마멸과 싸우기 위해서 칼보다 더 예리한 그 바늘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 바늘끝에서는 피가 흐르는것이 아니라 사랑과 정이 흘러 내립니다.
남자들이 칼을 찼을 때 용감해 보이는 것처럼 여자는 화장대가 아니라 반짇고리옆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다와 보이는 법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가는 바늘귀에 실을 꿰기위해, 온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우리의 어머니, 그리고 그 아내의 표정을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그 꼼짝도 하지않는 수도사와 같은 경건한 자세를 바라본적이 있으십니까? 더이상 옷을 기워입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은, 폭력에 의해서, 시간에 의해서 찢기고 헐고 낡아지는것에 대해 이미 그 저항의 힘, 재생의 꿈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어머니의 문화가 끝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고있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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