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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돌아 깨달았네, 이렇게 멋있는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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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인왕산(2005)’ 앞에 선 김병기 화백. “예술에 완성은 없다. 완성을 위한 과정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내가 이처럼 거창하고 이처럼 멋있는 나라를 두고 어디 있었나 하는 느낌을 지금 갖습니다. 제가 돌아왔습니다. 여러분은 내 객관이요, 주관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같이 있었습니다. 함께하는 한마음으로 여생을 살고자 합니다. 여생이랄 것도 얼마 안 남았지만(웃음).”

 100살을 앞둔 노화가가 2일 오전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미술관 첫 회고전을 여는 김병기(98) 화백이다. 한국 근현대 미술의 산 증인인 그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내년 3월 1일까지 ‘김병기: 감각의 분할’전을 연다. <중앙일보 10월 21일자 23 면>

 “한국을 떠난 지 49년이 됐습니다. 49세에 한국을 떠나 49년이 돼 98세입니다. 밸런스(균형)가 맞는다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서양만 생각했습니다. 서양에 가서는 동양만 생각했어요. 동양을 생각함은 나 자신을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인 1916년 평양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이 열리던 시기 일본 도쿄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해방공간에서 북조선문화예술총동맹 산하 미술동맹 서기장을 지냈고, 6·25 때는 피난지 부산에서 서울대 미대 학생들을 가르쳤다.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이던 65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커미셔너로 미주 대륙을 밟고는 그 길로 눌러앉았다. 분단과 냉전을 겪었고, 미국 속의 한국인으로 살고 있다. 그의 작품엔 이렇게 그가 살아온 시대가 녹아 있다. 미국에서 제도사로 일하며 밤이면 화폭에 자 대고 선을 그었다. 그렇게 분할된 화면은 그가 떠돌았던 평양이고, 서울이며, 도쿄·뉴욕·파리였다.

 회화 70여 점과 드로잉 30여 점이 소개된다. 50년대 중반의 그림으로 시작해 최고령 현역 화가의 올해 신작까지 망라했다. 1일 오후 열린 전시 개막식에는 김창열(85)·박서보(83)·정상화(82)·윤명로(78) 등 화단의 원로들이 한데 모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8년 만에 귀국한 스승이자 선배를 만나기 위해서다. 환영 인파에 둘러싸여 그는 한참 동안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02-2188-0600.

글·사진=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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