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기 KT배 왕위전' 포기한 마지막 용틀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제39기 KT배 왕위전'
제 9보(142~163)
○ . 왕 위 이창호 9단 ● . 도전자 옥득진 2단

엎어지고 뒤집어지는 난세의 바둑이 구경꾼에겐 더 재미있다. 이창호 9단도 최근엔 이처럼 격렬한 스타일로 바둑을 바꿨고 그 바람에 전체 프로기사 중 KO율이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인기 때문이 아니다. '계산이 안 돼서'라고 이 9단은 대답한다.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는 계산력으로 한 시대를 휘어잡은 이창호 역시 30대에 접어들며 계산이 가물가물한 것이다.

그러나 이창호란 사람은 끝까지 싸우지는 않는다. 한참 이겼는데도 계속 싸우는 그런 바보 같은(?) 행위를 본질적으로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전보에서 백의 이창호 9단은 다시 앞서나가게 됐다. 공격을 통해 하변 흑을 완벽하게 에워싸며 백의 엷음은 사라졌고 중앙 집의 가능성을 높였다. 중앙이 두터워지면 조금 미세해도 골머리를 썩일 필요가 없다. 계산이 쉬워지는 것이다.

144는 이런 편안함이 가져온 완착. 145쪽이 더 크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옥득진 2단은 필사적으로 틈을 엿보고 있다. 155로 큰 곳을 찾는다면 아무래도 A쪽일 텐데 그쪽은 너무 밋밋해 155쪽으로 손길이 간다. 158 젖혔을 때 옥 2단은 최후의 용틀임을 해볼까 망설인다. 흑▲와 155는 노림을 추구하다 형세를 그르친 원흉이긴 하지만 그들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한번 '참고도1'의 흑1로 습격해보고 싶다. 흑1에 백2로 이어주면 흑3에 두어 백 넉 점을 잡을 수 있다. 지금 같은 보리 흉년에 굉장한 수확이다.

그런데 문득 '참고도 2' 백2로 끊는 수가 보인다. 흑B엔 백C로 끊어 패인 데다 D도 남아 차마 결행하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날은 저물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