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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 풍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사회의 부정, 비리, 불법을 법에 호소하거나 공론에 붙이는 것은 시민의 양식에 비추어 당연한 일이다.
뻔히 잘못된 일인줄 알면서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수수방관하거나 귀찮다고, 또는 후환이 두려워서 고발을 하지 않는 것은 현대사회의 시민된 도리일 수가 없다.
민주사회란 시민의 권리의식과 책임의식을 바탕해서 유지되는 사회이다. 부정, 불법을 고발하는 시민정신은 조장했으면 조장했지 타기할 일은 아닌 것이다.
사회정의를 유지한다는 뜻에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고소, 고발은 장려되어 마땅하지만, 거기에는 누가 보아도 명백한 객관적인 사실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거짓이나 풍문, 추측에 근거해서 고발하는 인륜은 물론 사회정의에 어긋난다.
더우기 특정인 사이의 경쟁심, 시기심 따위 개인감정이 개재되었을 때의 고소나 고발은 이 사회에 커다란 해독을 끼친다.
사직당국에 접수되는 고소, 고발의 대부분은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확보한다는 명분을 띠고 있지만 그 가운데는 개인적인 분풀이의 수단으로 적법절차를 악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경찰에 구속된 어느 「상습모해투서꾼」은 무려 4백번 가깝게 고소 및 투서질을 했으며 개중에는 『고소하는게 내 직업』이라고 궤변한 사람까지 있었다니 한마디로 어안이 벙벙해질 뿐이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없는 사실을 만들어서 남을 중상하고 음해함으로써 하찮은 자기만족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거기에는 못먹는 밥 재나 뿌리자거나 『털어서 먼지 안나랴』는 고약한 심성이 바탕에 깔려있음은 물론이다.
이들의 표적이 되어 고소, 고발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중상, 음해행위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이 한번쯤 수사기관의 소환을 받아도 불쾌한 일인데 하물며 정당한 공무집행을 하고도 투서 때문에 걸핏하면 수사기관에 불려다닌 사람들의 심경이 어떠했겠는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똑같은 사안을 갖고 22번을 고소당해 10여년동안 시달린 사람까지 있었다니 그들의 심정은 한마디로 피가 마르는 것 같았을 것이다.
이같은 무고풍조를 이조당쟁사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흔히들 본다.
중상모략으로 권좌를 쫓겨났던 사람들이 다시 세도를 잡게되는 과정에서 무고, 음해를 일삼게되며 「피의 보복」이 다른 보복을 부르고 무고는 또 다른 무고를 부르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이런 병리현상이 남아있는 한 우리사회는 음산한 분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 남을 헐뜯고 무고를 일삼는 자들이야말로 「불신확산의 주범」이다. 이같은 풍조가 이 사회에 발을 붙일 수 없다는 사실을 당국은 실천으로 증명해야할 것이다.
이른바 서정쇄신을 폈던 재작년 국보위에 접수된 각종 투서 가운데 90% 이상이 무고, 모함의 익명투서였다. 이같은 사실 하나만 갖고도 무고풍조가 이 사회에 얼마나 뿌리깊은가를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이같은 악습을 추방하는 일은 결코 간단할 수가 없다. 검찰이 적발한 무고사범은 모두 기소하고 법정최고형을 구형키로 한 방침은 너무나 당연하다.
다만 모함, 무고풍조의 일소에 치우친 나머지 정당한 고발, 고소를 위축시키는 일은 없어야하며, 건전한 건의, 고발은 모두 수렴할 수 있는 아량도 지녀야할 것이다.
정당한 고소, 고발을 권장하는 일은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밑거름이라는 뜻에서는 물론 무고, 음해풍조를 뿌리뽑는 하나의 수단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단 법의 올바른 집행을 보장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우리사회의 도덕적 정당성을 다진다는 뜻에서 무고행위에 대해서는 당국의 강력한 대응이 계속해서 있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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