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거노믹스 교험유무 양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국경제는 지금 어디쯤 와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미국행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땅거미질 무렵에 와있다. 앞으로 회색하늘이 여명으로 밝아질지, 아니면 황혼으로 어두워질지 우리는 주시하고 있다』고 답변했다고 최근 뉴스위크지는 인용하고 있다.
9월 중순이 지나면서도 미국경제가 탈불황의 기지개를 켜고 있는지, 그대로 회색지대를 방황하고 있는지, 또는 더 악화하고 있는지에 대해 확실한 진단을 내리는 전문가가 없다. 레이거노믹스란 경제처방은 1년반이 지나도록 실적을 자랑할 수 없는 형편이다.
단편적이기는 해도 희망적인 지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전통적으로 경기회복세를 주도해온 주택과 자동차부문중 자동차판매고가 9월들어 뚜렷한 증가를 보였다. 미국의 3대 자동차메이커들의 판매고는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13·4%가 증가했다.
그러나 오랜만에 나타난 이 증가계수를 하나의 추세로 단정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바로 전달인 8월에는 판매고가 35% 감소했었기 때문이다.
장기적 전망이기는 해도 그동안 비관론이 지배적이던 강철업계에서 조심스런 낙관론이 나오고 있다. 최근 상무성이 발표한 보고서는 80년대중 미국강철수요가 연간 1∼1·5%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전망은 1%를 밑돌던 70년대의 성장률을 앞지르는 것이며, 실현될 경우 현재 시설의 40%밖에 안되는 가동률을 평균 85%로 올릴 수 있다.
「레이건」행정부가 가장 내세우는 실적은 인플레부문이다.
「레이건」이 대통령에 취임한 81년1월 9·7%였던 인플레는 최근 5·1%로 내려갔고, 8월중 소비자물가는 연율로 따져 3·3%에 머물렀다. 그래서 일반소비자들의 실질구매력은 1년만에 처음으로 1·5% 높아졌다.
금리인하도 기대이상으로 순조롭게 이루어져 월부판매 붐의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레이건」이 대통령에 취임한 81년1월 연20%이던 우대금리는 이제 13·5%로 내려갔다.
그러나 미국경제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때 이런 단편적인 낙관요인을 순식간에 무효화할 수 있는 비관요인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가 실업률의 급격한 상승이다. 81년1월 7·4%이던 실업률은 1년9개월만에 9·8%로, 1941년이래 최고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실업률은 곧 10%선을 넘어선 것으로 전망된다.
실업자를 늘리지 않고 인플레이션을 치유할 수 있다고 호언한 이른바 「공급측면 경제학」의 허망된 논리는 「레이건」자신도 믿을 수 없게 됐다.
인플레 치유의 또 하나의 피해는 기업 도산 사태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9월2일까지 1주일동안 5백63개 업체가 도산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8%나 늘어난 것이다. 기업 도산율은 여름한철 주춤했을뿐 7월말이래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데 금년들어 8월말까지 도산 업체는 1만5천1백33건이며, 이 수준으로 연말까지 계속되면 1932년 세계대공황이래 최악의 수준이 될 것이라고 한다.
또 하나 불길한 지표는 8월들어 내구상품의 수주량이 1·4%나 줄었다는 상무성의 발표다. 이는 지난해 10월이래 가장 큰 월단위 감소율이다.
경기추세를 파악하기 위해 상무성이 매달 조사, 발표하는 주요경제지표가 지난4월이래 1∼1·4% 테두리안에서 계속 상승세를 보이다가 8월에 1%하락했다. 이 지표는 지난 붐으로 불황의 밑바닥을 헤어났고, 언제 경기가 되살아나느냐는 시기와 경기회복세의 강도만 미지수로 남아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하던 레이거노믹스의 실무자들을 다시 주춤하게 만들었다.
기복이 심한 각종 지표를 놓고 일관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경제전문가들의 엉거추춤한 태도에 대해 뉴스위크지는 『빨강·파랑·노란색 불이 두서없이 켜졌다, 꺼졌다하는 신호대 앞에 서있는 자동차 운전사』에 비유했다.
그런 혼란은 정부의 최고 경제자문역으로 지명된「펠드스타인」의 인준 청문회증언에서도 나타났다. 83년GNP성장률이 얼마나 되리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3·5%라고 대답했다.
그런 전망의 근거를 대라고 의원들이 추궁하자 그는 얼마전 아리조나주시도니에서 모임을 가진 43명의 경제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해본 결과 2·9%에서 3·9%까지 갖가지 예측이 나왔는데 그 평균치가 3·5%였다고 답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으로 선 땅거미는 새벽을 알리는 신호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경제지표들은 아직도 미국경제가 회색지대에 머물러 있음을 시사하고있다. 【워싱턴=장두성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