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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식 반짝 지원 등 고질병 고쳐질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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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문화예술위원회 설립위원 11명이 위촉됨에 따라 관 주도의 문예진흥원 시대가 막을 내리고 현장 예술인 중심의 문화예술위원회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됐다. 1973년 문예진흥원이 개설된 이래 32년 만이다.

◆ 문화예술위원회는 무엇을 하나

문화예술위는 예술단체 지원과 각종 정책 수립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우선, 문예진흥원의 문예진흥기금 5000억원을 인수하고 진흥원이 해마다 정부에서 받아온 복권기금 500억원도 그대로 받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매년 1000억원을 예술가와 예술단체에 지원하게 된다.

그간 예술계에서는 소액다건주의(가능한 많은 단체에 적은 돈을 지원하는 방식)로 인한 자생력 결핍, 인맥.학연 등에 의존한 지원 편중 등의 문제점이 꾸준하게 제기돼왔다. 지원받은 기금은 반드시 해당 연도에 작품화해야 한다는 공무원식 발상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 양산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연극 분야 위원에 임명된 심재찬씨는 "그간 정부 주도 자문회의에서 현장의 이야기를 아무리 역설해도 반영되지 않았다"며 관 주도 문화예술정책의 한계를 토로했다.

새로 출범되는 문화예술위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기구다. 기존의 소액다건식 지원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전략적 배분으로, 행사 위주의 단발성 지원은 다년간 지속 지원제도로 바뀔 예정이다. 문화관광부 김갑수 예술정책과장은 "문화예술위가 출범하면 지원범위를 창작뿐 아니라 유통.소비까지 확대하고, 탈장르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에도 지원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계속되는'코드 인사' 논란

문예진흥원의 위원회 전환은 90년대 중반부터 문화예술계에서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전환 작업은 탄력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문예진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 사실상 문화예술위원회 전환이 확정됐다.

그러나 위원회 구성을 두고 정계와 문화계에서 적잖은 논란이 벌어졌다. 최근 몇년새 문화계 전반에 걸쳐 민예총 출신 인사가 넓게 포진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주도한 위원회도 '코드 인사'로 얼룩지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장르의 분배, 보수와 진보, 심지어 출신학교에 따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진 것도 위원회를 구성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계 인사는 "11명의 위원 중 특정 성향을 가진 인사들이 여럿 포함됐다는 것은 코드 인사를 여실히 반영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위원회의 기능 자체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단독책임제는 소신을 갖고 사업을 추진하는 반면, 위원회 제도는 권한은 있되 책임은 없어 자칫하다간 정책과 사업이 허술해지기 쉬운 단점이 있다. 상명대 조희문 교수는 "자율, 분권, 예술인의 참여 등 취지는 좋다. 하지만 위원회는 책임이 분산돼 사업이 방향을 잃고 흔들릴 여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달 말 출범하는 문화예술위원회의 성패는 위원들의 신념과 의지,경륜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는 전체적인 틀만 있을 뿐 세부적인 사업 방향은 백지 상태이기 때문이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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