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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해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A·테니슨」의 시.
-남자는 들에, 여자는 벽난로 곁에/남자는 칼을 위해, 여자는 바늘을 위해/…남자는 명령하고, 여자는 순종하고/그밖의 모든 것은 혼동일 뿐.
정말 그런 사나이가 있었다. 영화『하이눈』에 등장한 「게리·쿠퍼」. 백양 대로상, 공포의 정적속에 혼자 권총을 빼어들고 대결하는 모습.
「헤밍웨이」의 소설에 등장하는 남성도 하나같이 사나이 같은 사나이들이다. 전쟁터의 전사로, 4각의 링에 군림한 챔피언으로, 여자앞의 사나이로-.
그야말로 사자나 호랑이를 때려잡는 야성이 철철 넘치는 남자.
이런 남성들은 직장에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일꾼」이고, 전쟁에선 「투사」이고, 가정에선 「주인」일수 있었다. 오늘의 미국은 이런 투사와 일꾼과 주인들에 의해 건설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이눈』의 「게리·쿠퍼」는 이 시대 미국 남성, 아니 모든 남성의 명예와 의지와 힘을 지키는 마지막 모뉴먼트(기념회)가 되어가고 있다.
지난 70년대, 미국에서 소리없이 번지기 시작한 「남성해방」운동은 바로 이런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엄마같은 아버지」, 「주부같은 남편」, 「남성구실에 약한 남성」을 해방시켜야한다는 소리가 날로 높아가고 있다.
엊그제 외신은 워싱턴시의 한「자유남성」운동가가 이혼 후의 자녀양육, 낙태, 병역문제 등에서 남성은 너무 많은 피해를 보고있다고 비명아닌 고함을 질렀다.
70년대말 아카데미상까지 받았던 『크레이머대 크레이머』라는 영화도 바로 그런 주제였다. 이혼당한 남편이 혼자 아이를 떠맡는다. 원작자「A·코먼」은 10년전만 해도 이런 작품은 내놓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가정밖, 사회속의 남성들도 옛날의 남성이 아니다. 언젠가 뉴스위크지에 미국의 회사원들이 전직을 하는 이유를 조사한 얘기가 났었다. 야근과 출장이 없는 직장을 찾아 전전하는 경향이 5년전에 비해 2배나 늘어났다는 것이다.
출세욕에 불타는 일벌레, 집념의 사나이는 이제 웃음거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도 같다. 심지어 승진도, 영전도 마다하는 풍조가 일고 있다고 한다.
1977년 미국의 심리잡지 사이콜러지 투데이의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의 미국 여성들은 남성들이 온순하고(텐더), 동점심이 많기를(컨시더리트)기대하고 있었다.
남자라고 그런 심리가 없으란 법은 없지만, 한마디로 좀「여성화」가 되라는 요구다. 여기에 허장성세와 직장에서의 성공까지 곁들여 주문하고 있다. 양이 되어 사자와 싸워 이기라는 얘기와 같다. 오늘의 남성들이 얼마나 고달픈가를 미국 아닌 여기서도 실감할 수 있다.
「테니슨」이 1세기만에 무덤애서 다시 깨어난다면 우선 자신의 시부터 고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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