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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의 고향<32>전의·예안이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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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가전충효 세수인경』 (충성과 효도로 가문을 전승시키고 세세손손 인과 경을 지켜나가라)-. 세종대왕이 효정공 이정간에게 하사한 이 8자어필은 오늘날 15만 전의·예안이씨들의 정신적 뿌리가 되고있다.
삼한개국공신 삼중대광태사(문관의 수위) 이도에서 씨족의 문을 열어 문중역사 1천여년. 조선조에 상신5명을 비롯하여 대제학1명, 청백리6명, 공신6명과 문과 1백76명을 배출한 명문이다.,
시조 도의 초명은 치. 고려태조가 후백제를 친정할때 공주금강에 이르러 홍수로 더 나아갈수 없게되자 묘책을 올려 도강에 성공하니 왕건은 그에게 도를 사명했다. 말년에 군사요충지인 전의현 운주산성을 쌓고 이곳에 영주, 후손이 전의로 관향을 삼고 오늘에 세계를 잇고 있다. 묘소는 충남 연기군 전의면 유천리에 모시고 향파일은 음력3월3일과 10월2일.

<예안은 분적종>
전의이씨는 문의공 이언충과 효정공 이정간, 문장공 이혼의 후손에서 큰인물이 나와 3대인맥을 이루니 예안이씨는 문장공을 시조로한 분적종으로 근자에 다시 전의와 합본하였다.
효정공 정간은 시조의 11대손. 사언부요직을 거쳐 강원도관찰사로 재임중 노모봉양을 위해 관직을 사퇴한 출천대효자였다. 그의 나이 80이었고 노모는 1백세를 맞아서였다.
공은 색동옷을 입고 병아릴를 희롱하여 노모를 즐겁게했고 이 사실을 전해들은 세종은 그를 정이품으로 올리고 지장 (고관이나 중신이 은퇴할 때 임금이 내리는 지팡이)을 하사했으며 친필로 「가전충효 세수인경」 의 여덟자를 내렸다.
더우기 세종은 공의 부인 악안김씨를 정대부인으로 봉작하는 특전을 내렸으니 이집안은 그 손이 번창하여 부인 생시에 내외증손이 l천2백8명, 현손이 90여명이었다.
『우리들 전의·위안이씨들의 가성이란 바로 이런 웃어른들의 생활에서 젖어내려 옵니다.물질을 경시하고 정신을 높이사며 공을 양보하고 책임을 떠맡고 남을 앞질러 출신하기를 부끄러워 하지요.』
화수회 사무국장 이정호씨는이런 가풍을 자랑하면서 한쪽에 숨겨진 문중의 약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혼벌을 중시해서 동일문벌과과 혼인을 중복한 나머지 후손들에게 지능을 떨어뜨리고 체위를 작게한 잘못이 있지요.』
따라서 종족개량을 지향하는 원격지 또는 상반된 성격의 가문과의 혼인을 적극 권장하고있다는 것이다.
문의공의 후손에서는 특히 증손인 귀의 자손이 크게 번창하여 영의정 (이탁) 과 우의정(이상진)이 나왔다. 귀의 6대손 효익공 준민은 남명 조식의 생질.
선조때 경기도관찰사와 병·이조관서를 지내며 동·서당쟁의 조정을 맡았고 시문에 능했다. 청백리로는 이신효(전라도관찰사), 이도 (성종조 영의정 정창손의 사위) 가 꼽힌다.
효정공파의 인물로는 그의 현손 극암 이창신이있다. 성종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참의에 올랐고 중국어·이문·을문등에 당대 제l인자로 꼽혔으나 연산군10년 갑자사변때 유배되었다.
문장공 후손에 이천·이명·이간이 빛난다.
불곡 이천은 태종∼세종대의 무인으로 왜구를 정벌한 대공에 이어 평안도 도절제사로 북방의 침입야인을 소탕하고 실지를 회복했다. 과학기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장영실을 지휘, 부천의·통의·자격누·사신토누등 천문기계와 대포인 진천뇌·도검·전함·마구등을 제작했다.
호반출신으로 출장인상·우중추원사·보국승나대부까지 올랐으며 1977년 태릉육군사관학교에 그를 기리는 익쇠관을 건립했다.
충효와 인경을 가헌으로 이어온 전의·위안리씨는 현대에서 숱한 인재들을 낳았으니 특히 학계와 관계에 가문의 별들이 빛나고 있다.

<일석도 한집안>
우리나라 국문학계의 독보적 석학인 이희승박사 (현 화수회장)는 조선조 이·병조판서를거쳐 좌삼찬을 지냈던 이문형의 13대손.
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투옥되어 해방되던 해까지 옥고를 치렀던 이박사는 국어대사전, 시집 『박꽃』, 수필집 『벙어리 냉가승』을 비롯, 초·중·고등문법등 국어국문학계에 특기할만한 공을 세웠다.
이영노박사(이대교수)는 우리나라 유일의 화본과 (볏과식물)식물학자. 우리가 일상 먹는쌀·보리·밀등 주식류와 많은 가축들이 상용하는 볏과식물을 최초로 연구종합 보고한 식물생태학의 권위자다.
법조계의 거목은 대법원장을 지냈던 이영섭씨(현변호사개업). 45년 경성지방법원관사로 데뷔, 79년 사법부수장에 오르기까지 일생을 오로지 법관으로 일관해왔다. 그의 뒤를이어 법조계에선 이준승대검검사(대전지검검사장)·이종찬판사·이종왕검사가 재조에서, 이종관·이석계·이정호씨가 재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야당총수를 지냈던 이철승씨는 문의공파의 후손. 현직의원으로는 이원형(신사당)·이종두(국민당)·이헌기 (민정당) 의원이 문중을 대표하고 있으며 도규계의 이상일박사와 실업계의이상현씨 (상경물산사장) 는 친형제간.
국토방위의 간성으로 전의·예안이문을 빚내는 별은 이광노(육군중장)이귀호(욱군중장)·이종환 (육군중장) 장군이 있으며 전해군참모총장 이성호예비역대장도 전의·예안 이문.
언론계에선 이우세(서울신문전무)·이광동(경향신문논설위원)·이진섭 (KBS상임심의위원) 이 돋보인다.

<저명인사>
(화수회제공·무순) ▲이희원 (화수회부회장) ▲이용범 (운수회사사장)▲이종문(전조은전무)▲이용(이일건설사장)▲이한우 (풍한철강사장) ▲이신호 (유신실업사장) ▲이희준 (전조선전업사장) ▲이문세 (전국회전문위원) ▲이낙선(전상공장관)▲이석왕 (제헌국회의원) ▲이종근 (전국회의원) ▲이종직 (연합통신상근이사) ▲이만복 (예비역육군중장) ▲이한곤 (한일실업사장) ▲이종득 (경부경사관리사무소장)▲이정세(서울구치소장) ▲이기로 (영등포소방서장) ▲이쇄호 (춘천시장) ▲이충세 (서울시교위이사관) ▲이상룡 (국방부편수관)▲이중호(법무청이사관) ▲이기섭 (세관장) ▲이비민 (농업진흥공사부사장) ▲이철 (대한농기구협회전무) ▲이상린 (대한체육회 태릉선수촌장)▲이한종(한국금속시험연구소부장) ▲이의채(귀금속공업협회장)▲이희철(인하대교수) ▲이강로(단국대교수)▲이강교 (서울대공대교수) ▲이구충(외국어대교수) ▲이인세(경희대교수) ▲이행세 (아주공대교수) ▲이종명 (서울대교수)▲이종낙 (한양대교수) ▲이종찬(동국대교수) ▲이종무(성신대의대교수) ▲이막귀 (성대교수) ▲이대선 (국민대교수)▲이태욱(충북대교수)▲이경호(서강대교수)▲이상만 (원광대교수) ▲이기춘(전북대교수) ▲이상배(경기도교위사무국장) ▲이경로 (통문관경염) ▲이석수(예술가협회감사)▲이강세 (도예가)▲이종인(문예진흥원부장) ▲이종갑 (시인) ▲이영욱 (작곡가) ▲이용만 (전북은전무) ▲이희강 (농협이사) ▲이창로 (신탁은 지점장) ▲이기종(외환은지점장) ▲이경직 (한일은지점장) ▲이상우 (대한투자신탁지점장) ▲이범노 (남선물산사장) ▲이용영 (유 일 산업사장) ▲이교웅 (범룡상사사장) ▲이윤세(우일산업사장) ▲이상호 (태양상사사장) ▲이상호 (부이통상사장) ▲이정수(여·실업인)▲이성호 (한영양복사장)▲이한철(대한페인트전무)▲이용호(춘성석회석사장) ▲이한무 (삼산탄광사장)▲이중식 (한국삼협사장) ▲이광세 (삼광기업회장) ▲이한왕 (광일토건사장) ▲이철호 (보림모직사장) ▲이영세 (풍산금속사장) 글·고정웅기자 사진·김주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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