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폐지 반대한 장관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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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호주제 폐지 특별기획단'을 구성키로 확정함에 따라 호주제 폐지 문제는 정부가 의지를 실어 적극 추진하는 단계가 됐다. 관련 정부 부처가 힘을 모아 대안을 고민하는 범정부적 기구가 꾸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1997년 3월 9일 한국 여성대회에 참가한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단체들이 '부모 성(姓) 함께 쓰기'를 선언한 지 6년 만의 일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날 오후 급속한 호주제 폐지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신속한 폐지에 무게를 실은 가운데 앞으로 이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국무회의 결정 배경=여성계는 호주의 승계 순위가 남성 위주이기 때문에 남아 선호 사상을 불러일으키는 등 문제가 커 호주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여왔다.

반면에 유림 등 보수 세력들은 "호주제 같은 한국의 전통문화가 현재 사회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없애서는 안된다"고 반박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여론은 호주제 폐지로 급격히 선회했다. 당시 모든 대선 후보들은 호주제 폐지 원칙에 동의했다.

'참여 정부'에서 호주제 폐지는 대선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데다 대통령직 인수위에서도 '국민적 공감대 확산 및 합리적 대안 마련과 민법 개정안 준비가 시급하다'는 입장을 이미 정리한 상태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 중 한명의 반대도 없이 여성부 보고안이 확정된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작용한 결과다.

◆ 기획단의 역할과 구성=참여하는 부처는 여성부.법무부.문화관광부.국정홍보처 등 네곳. 업무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호주제 폐지를 위한 범국민 여론 형성. 문화관광부와 국정홍보처, 기획단에 참가하는 시민사회단체의 몫이다.

호주제 폐지가 기존의 가정 개념을 완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알려 폐지 반대 여론을 무마해야 한다. 국민적 합의 도출이 앞으로의 최대 과제다.

관련 법률 개정 업무는 법무부가, 호주제 폐지 이후 대안 연구는 여성부가 주로 맡게 된다.

기획단장은 안재헌(安載憲) 여성부 차관이 맡을 예정이며 이르면 다음주 중 첫 회의를 한다. 기획단은 특히 호주제 폐지 이후에 대해 분명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호주제 폐지를 기존 가족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라고 생각하는 폐지 반대론자들이 여전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게다가 '가족별 호적 편제'와 '1인 1호적제' 등 호주제 폐지 이후의 대안에 대해 여성계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야당의 반발=대선에서는 호주제 폐지를 내걸었던 한나라당은 6일 충분한 국민적 논의를 거쳐 다룰 문제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한나라당 이상배(李相培) 의장은 "호주제 폐지는 가족제도를 기본적으로 바꾸는 것인 만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국민 간의 충분한 논의 없이 이런 문제를 후다닥 해치울 수 없다"고 반대했다.

李의장은 또 "호주 승계 순위 및 친양자 제도 개선 등 호주제 폐지에 앞서 논의할 게 많다"며 "이런 문제점들을 먼저 해결하고 점진적으로 호주제를 폐지해야지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쫓기듯 폐지하는 것은 반대"라고 말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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