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청 '핵폭풍'] 합법 감청 외국에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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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베를린에 있는 슈타지 문서관리청 내부. 이곳에는 옛 동독의 국가안전부(슈타지)가 32년 동안 도청 등을 통해 수집한 각종 비밀문서가 보관돼 있다. 1991년 특별법을 제정해 선별적 공개를 결정했다. [베를린 AP=연합뉴스]

각종 통신수단에 대한 감청은 주요 선진국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물론 법원의 영장을 받는 등 합법 절차에 따른 감청이 허용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도 국가 안보, 범죄 수사, 테러 예방 등을 위해 감청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2001년 9.11 테러 이후엔 감청이 더 활발해지는 양상이다. 그러나 감청의 확대는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논란은 해외에서도 끊이지 않고 있다.

◆ 미국=2001년 10월 제정된 '애국법'(Patriot Act)은 수사기관의 감청권을 강화했고, 감청 대상도 넓혔다. 수사기관이 '테러 관련'이라는 이유를 대고, 법원의 허가를 받으면 유무선 전화와 팩스, e-메일 등 거의 모든 통신수단을 감청할 수 있는 것이다. 영장을 발부받을 경우 길게는 1년 동안 감청할 수 있고, 그 자료를 외국의 기관에 넘겨줄 수도 있다.

이후 연방수사국(FBI)의 감청은 급증했다. 최근엔 "감청이 너무 많아 해독요원이 모자랄 지경이며, 그 바람에 풀지 못한 감청 테이프가 무려 8000시간 분량이나 된다"는 보도도 나왔다. 지난달 상.하원은 애국법에 있는 감청 관련 규정의 효력을 4년간 연장했다. 그러나 애국법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등은 "수사기관이 애국법을 멋대로 적용하는 것을 막지 못하면 개인의 자유 보장이란 건국이념은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주장한다.

◆ 프랑스=1991년 7월 제정된 통신비밀보호 관련 법에 따르면 행정부는 ▶국가 안보와 국방 ▶테러.조직 범죄 수사 ▶경제.사회적 잠재 역량 보호 등을 위해 전화 감청을 할 수 있다. 관련 부서 각료의 요청이 있으면 총리가 감청을 허가한다. 기간은 최장 4개월이고 연장이 가능하다.

사법당국도 감청할 수 있다. 판사가 범죄수사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형사소송법에 의해 감청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감청 대상은 2년 이상의 징역형이 예상되는 범죄에 한한다. 기간은 역시 최장 4개월이다.

프랑스에선 현재 고(故)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시절의 도청 사건 재판이 진행 중이다. 대통령궁인 엘리제궁 직속의 특별팀이 도청을 했던 사실이 93년 드러났고, 지난해 11월 재판이 시작됐다. 특별팀은 82년부터 3년간 환경단체인 그린피스 소속 선박 침몰 사건, 미테랑 혼외 딸 문제 등에 대한 정보를 통제하기 위해 정치인.기자.사회운동가 등 150여 명을 도청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미테랑 비서실장을 지낸 질 메나주, 특별팀 책임자 크리스티앙 프루토, 로랑 파비우스 당시 총리의 비서실장이었던 루이 슈웨체르 르노 회장 등 12명이 재판에 회부됐다.

◆ 일본=99년 제정된 '통신방수(傍受)법'은 총기 밀매, 조직 범죄에 의한 살인, 집단 밀항, 마약 밀매 등 네 가지 범죄에 한해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합법적으로 감청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방수'는 '감청'을 뜻한다. 감청 기간은 10일 이내이며, 연장하더라도 모두 30일을 초과할 수 없다. 감청 때에는 통신회사 직원이 입회할 수 있도록 의무규정을 뒀다. 수사기관은 감청 내용을 적은 기록을 법원에 제출해야 하며, 감청 대상자는 그걸 열람할 수 있다. 감청에 대해 상당히 까다롭게 규제한 것인데도 당시 야당은 이 법안이 통신비밀보호를 규정한 헌법에 어긋난다며 반대했다. 그래서 자민당은 날치기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 영국.독일=7.7 런던 테러 이후 토니 블레어 총리는 불특정 다수의 대량 살상을 초래할 수 있는 사안에 한해 도청할 수 있게 하고, 그에 대해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내용의 '대(對)테러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테러 예방과 테러사건 수사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수당과 인권단체는 프라이버시 침해를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독일에선 수사기관의 감청뿐 아니라 일부 도청까지 허용한 니더작센주 경찰법에 대해 지난달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이 법은 범죄 예방 차원에서 구체적 혐의가 없는 사람의 휴대전화 등도 도.감청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헌재는 "그것은 도청당하지 않을 권리를 부여한 헌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워싱턴.베를린.파리.도쿄=김종혁.유권하.박경덕.예영준 특파원,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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